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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살기 위해… 광기의 세계에 힘겹게 손 내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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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살기 위해… 광기의 세계에 힘겹게 손 내밀다

입력
2015.04.1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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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살 이전 기억을 잃어버린 소년

나치 전범이었던 양부모님은 비참한 도피생활 끝에 사지로

"나의 근원은 어디에서 왔나"

정체성 찾는 40년 간의 여정 그려

마그누스 실비 제르맹 지음ㆍ이창실 옮김 문학동네 발행ㆍ308쪽ㆍ1만3,800원
마그누스 실비 제르맹 지음ㆍ이창실 옮김 문학동네 발행ㆍ308쪽ㆍ1만3,800원

이 소설은 상중(喪中)이다. 세계의 폭력에 압도된 무력한 개인이 맞닥뜨리는 죽음의 치명적 기록들이다. 그 죽음은 사랑하는 이들의 부재를 초래한 견딜 수 없는 사건들이기도 하고, 응당 처단해야 했던 무도한 악의 허망한 종결이기도 하지만, 가장 근본적으로는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끝없이 스스로를 절멸해야 했던, 생애가 통째로 안개 속에 휩싸인 자의 내면적 자살의 기록이다. 죽은 채로 살아가야 했던, 살고자 분연히 일어서지만 가까스로 살아있을 수밖에 없던 자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기록이다.

프랑스 소설가 실비 제르맹(61)의 2005년도 작품 ‘마그누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고모라 작전’이라 불린 연합군의 독일 함부르크 폭격으로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한 소년의 생애를 그린 성장소설이다. 고작 300쪽 남짓한 분량에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초래한 참극과 한나 아렌트의 개념인 ‘악의 평범성’, 독일, 영국, 멕시코, 미국, 오스트리아, 프랑스로 이어지는 40여년에 걸친 방랑과 그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는 남자의 분투를 모두 담아냈다.

실비 제르맹의 '마그누스'는 참혹한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떠난 길고 긴 여행의 기록이다. 르 몽드는 "격앙됐으면서도 완벽하게 절제된 감성으로 가득찬, 복잡하면서도 명쾌한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문학동네 제공
실비 제르맹의 '마그누스'는 참혹한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떠난 길고 긴 여행의 기록이다. 르 몽드는 "격앙됐으면서도 완벽하게 절제된 감성으로 가득찬, 복잡하면서도 명쾌한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문학동네 제공

서사가 증발된 채 시로의 회귀를 도모했던 전작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와 달리, 시대의 격랑과 그 속에서 좌초하는 개인의 이야기가 대하소설을 방불케 하지만, 실비 제르맹만의 신비하고 아름다운 스타일은 여전하다. 독자를 전율케 하는 시적인 문장은 너무도 빈번하고, 단장(斷章)으로 짧게 분절된 파편적 글쓰기는 서사의 여백 속에서 길게 메아리친다. 짧으면 한두 쪽, 길어봐야 너댓 쪽의 짧은 단장들은 시간순으로 번호가 붙어있지만, 작가는 이 순서를 마구 뒤섞은 후 그 사이 사이 약주(略註)를 비롯해 속창(續唱), 기도문, 연보 등을 삽입해 정보를 경제적으로 전달하는 효율과 동시에 독자의 통증을 유발한다. 과연 어머니는 죽었을까 살았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에 어머니 가계의 생몰연도를 연보의 형식으로 제시함으로써 결국 죽었음을 알리고, 독자는 이 간단한 숫자 앞에서 탄식하게 된다.

베이스바리톤의 아름다운 음성으로 슈베르트의 가곡을 자주 불렀던 의사 아버지와 다섯 살 이전의 잃어버린 기억을 회복시켜 주기 위해 온갖 이야기를 들려주던 다정하고 자애로운 어머니. 이 완벽한 중산층 가정에서 프란츠게오르크는 평범하지만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히틀러 총통의 자살로 나치의 패배가 명확해지자 부모는 돌연 이름을 모두 바꾸고 도피생활을 시작한다. 두려웠지만 존경했던 아버지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 최전선에 있던 의사였고, 어머니 역시 나치에 반대하는 친오빠와 의절할 만큼 히틀러를 신봉한 간접적 범죄자였다. 이름을 잃지 않은 것은 소년이 언제나 들고 다니던 곰인형 마그누스뿐이다.

비참한 도피생활의 유일한 희망은 멕시코로의 비밀 망명. 먼저 떠난 아버지는 그러나 감시와 추적에 지쳐 자살했다는 비보만을 전해오고,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어머니는 가스실로 보내졌던 부유한 유대인 여인들에게서 강탈한 보석을 곰인형의 눈에 박아 소년의 손에 들려 의절한 오빠가 살고 있는 영국으로 보낸다. 전범 가족의 이름을 버리기 위해 그곳에서 아담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은 소년은 외삼촌의 보호 아래 청년으로 자라나고, 혐오스런 아버지에게 품었던 사랑의 구역질 나는 잔여물을 영원히 녹여버리기 위해 아버지가 숨을 거뒀다는 멕시코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벼락처럼 내리친 기억은 그가 폭격으로 친모를 잃었고, 불에 눌은 곰인형 마그누스를 꼭 껴안은 채 불임이었던 어머니에게 입양됐으며, 혼외자가 있던 아버지는 이 입양에 반대해 자신에게 늘 엄격하고 냉랭했던 것. 자신의 근원이 완전한 백지 상태임을 깨닫게 된 아담은 수많은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모국어가 없는 존재인 자신의 이름을 생애의 유일한 동반자의 이름 마그누스로 다시 한번 바꾼다.

첫 연인의 죽음을 극복하고 마침내 두 번째 사랑에서 안식을 찾은 마그누스는 청혼하기 위해 찾아간 빈의 시골풍 식당에서 친구들 앞에서 슈베르트를 노래하고 있는 80대의 한 노인을 만난다. 이 익숙한 목소리가 불러일으킨 의구심을 확증하기 위해 마그누스는 연인에게 바치고 싶다며 옛날 아버지가 즐겨 부르던 ‘사랑의 정령’을 신청한다. 그 음색과 억양. 흥에 취해 노래를 부르는 노인은 멕시코에서 죽었다던 아버지였다. “쾌활한 낙천가의 모습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 비열한 인간” “인간 공동체에 보란 듯이 속해 있는 극악무도한 자”를 본 마그누스는 분노에 휩싸여 아버지에게 정체를 알고 있다는 쪽지를 보내고, 이것이 연인을 죽음으로 내몬다.

침묵과 숨결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이 소설의 특징은 홀로 된 마그누스가 프랑스 시골마을에 칩거하며 고독 속에 자신을 유기하는 마지막 부분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난다. 곰 인형 마그누스를 물줄기 속에 던져버리고 “떠나라”는 마음 속의 나지막한 외침에 부응하며 그가 꺾인 무릎에 다시 힘을 가할 때, 이 힘겨운 화해와 구원의 여정은 두고 두고 길게 퍼져나갈 파문을 마음 속에 기어이 일으키고 만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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