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지나도 후유증 심각"
치료 손 놓은 정부에 원망도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에 대한 꾸준한 치료의 중요성은 과거 대형재난 사고 피해자들의 사례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끔찍한 참사의 기억은 십수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고통으로 남아 있다.
2003년 2월 발생한 대구지하철 참사로 아내와 딸을 잃은 전재영(53)씨는 사고 이후 운영하던 컴퓨터 학원도 그만두고 여전히 집에서 홀로 슬픔을 견뎌내고 있다. 그는 9일 “일을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잘 안 된다. 살아보겠다는 의욕을 다 잃은 상태”라며 한숨을 쉬었다. 노모를 모시며 하나 남은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전씨는 요즘도 가족 간에 사고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는다. 황명애(58)씨는 대구지하철 참사로 대학 입학을 눈 앞에 두고 있던 고교생 딸을 떠나 보낸 뒤 지금까지 공황장애와 폐쇄성장애, 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조울증세가 나타나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려울 정도다. 황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으나 사소한 것에도 놀라고 식은땀이 난다”고 했다.
20년 전인 1995년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 9일만에 구조된 최명석(40)씨는 “몇 년 동안은 무기력증에 빠져 생활 자체가 안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최씨는 매몰 상태에서 우연히 잡게 된 죽은 사람의 손이 구조 후에도 눈만 감으면 머리 위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 힘들어 했다. 그는 “끔찍했던 사고를 억지로 잊으려다 보니 방금 읽은 것도 기억나지 않은 등 후유증이 오래 갔다”고 고백했다.
지금도 가슴 한 구석에 사고의 응어리를 지닌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 증상이 얼마나 심각한 병인지 얘기해주는 이들은 없었다. 특히 “알아서 치료하라”며 손을 놓은 정부에 대한 원망이 크다. 1999년 경기 화성 씨랜드 화재 사고로 막내 아들이 숨진 이경희(61)씨는 “배상과 보상이 끝난 순간 정부는 할 일을 다 했다는 태도를 보였다”며 “정부가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게 ‘배상금을 받으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재영씨도 “정부가 제공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이나 보상금은 없었다”며 “개인적으로 병원을 찾거나 술로 달래면서 혼자 삭였다”고 했다.
특히 이들은 대형 사고로 가족을 잃은 슬픔에 대해서도 사고 초기부터 국가가 나서서 보듬어줘야 한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황명애씨는 “개별적으로 받은 정신과 치료도 많은 도움은 되지 못했다”며 “세월호 같은 큰 참사가 일어나면 정부가 나서 체계적 치료를 해주는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민정기자 fact@hk.co.kr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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