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 꿈꾸는 실리콘밸리 억만장자
페이팔 공동창업자 틸
생명연장·세포재생에 거액 투자
구글의 페이지·오라클의 앨리슨 노화방지에 수억달러 지원
美 작년 생명과학 민간투자 86억달러
불치·난치병 치료 믿음 커졌지만 부자에 생명연장 혜택 집중
페이팔, 구글처럼 정보통신(IT) 분야에서 막대한 부를 손에 쥔 미국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이 속속 수명연장 연구에 뛰어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IT거인들, 죽음을 이겨내는 최신 프로젝트에 빠지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과거 탐험가들이 ‘젊음의 샘’을 찾아 전세계 오지를 헤맨 것처럼 오늘날 억만장자들이 기술과 데이터를 이용해 영원한 젊음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보도했다.
22억달러(약 2조4,000억원)의 재산을 지닌 페이팔 공동 창업자 피터 틸(47)이 수명연장 연구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분자생물학자 신시아 캐년과 영국 컴퓨터 과학자인 오브레이 디그레이에게 거액을 투자하며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캐년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회충의 수명을 두 배로 늘리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디그레이는 기술의 발전이 노화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 사람으로, 틸이 창립에 기여한 센스 연구 재단에서 사람의 전생애에 걸쳐 축적된 세포 및 분자의 손상에 초점을 맞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틸은 또 무기한 보존할 수 있고 손상된 것은 줄기세포를 이용해 대체할 수 있는 인간의 장기에 대한 고속냉각 기술을 연구하는 프로젝트에도 투자해 왔다. 유전자 구조 연구를 통해 인간의 세포를 재생함으로써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그의 목적이다.
구글 역시 인간의 수명과 건강 관리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구글의 최고 경영자 래리 페이지는 2013년 노화방지 연구를 수행할 캘리포니아 라이프 컴퍼니의 줄임말인 칼리코(Calico)를 세웠다. 구글에서는 칼리코에 최대 7억5,000만달러(약 8,200억원)를 투자하고 있다.
페이팔, 구글뿐 아니라 페이스북 이베이 냅스터 등을 세운 IT 거인들도 건강, 수명연장 나아가 영생의 길을 찾기 위한 의학 연구에 수억달러를 사용하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정보 혁명을 일으키는데 사용했던 칩과 소프트웨어, 알고리즘과 빅데이터로 현존하는 가장 복잡한 기계인 인간의 몸을 이해하고 한 단계 향상시키는 것이다. 최근에는 빅데이터 분석이 발병을 예측하고 패턴을 찾아낼 수 있으며 불치ㆍ난치 질환의 치료방법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써 구글은 타미플루나 ‘감기 증상’을 검색한 인터넷 사용자의 주소를 모아 집단을 만들어 독감활동을 예측하는 ‘독감 열 지도’를 개발했다.
IT 억만장자들이 뛰어들면서 미국의 생물 의학 연구분야에서 과학적 연구절차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기존 연구는 가설과 실험, 연구 결과 분석과 과학계의 내부적인 검토 이후에야 일반에게 공개돼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의료 및 건강 관리연구의 대상에 대해 사람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남겨놓은 각종 디지털 지문들을 분석해 얻고 있으며, 슈퍼 컴퓨터가 수조개의 가설을 모의 실행해 패턴을 집어내고 상관관계를 분석해 의학적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빠른 시간 안에 제안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접근은 이미 유전자 연구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IT기업들의 의학에 대한 투자는 산업적 차원뿐 아니라 설립자의 개인적 관심에 의해서도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 냅스터 공동 설립자 숀 파커는 알레르기 및 새로운 암 치료법에 수백만달러를 기부했고 향후 파킨슨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LRRK2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는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은 유전자 연구에 1억5,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또 생물학을 전공한 그의 아내는 유전자 신생벤처기업 ‘23andME’를 설립했다. 세르게이 브린 뿐만 아니라 실리콘 밸리의 억만장자 중에는 과학이나 의학을 전공한 사람을 배우자로 맞는 경우가 많은데,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의 부인인 프리실라 챈은 샌프란시스코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그녀는 샌프란시스코종합병원에 7,500만달러를 기부했으며 주커버그 부부는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는 발견을 한 과학자들에게 주는 상을 제정하기 위한 작업에 기금을 내기도 했다.
IT 거인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은 도전적이다. 오라클의 창립자인 래리 엘리슨은 영원히 살고 싶다는 소망을 공개적으로 밝힌 후 4억3,000만달러를 노화방지 연구에 기부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전기작가에게 “죽음은 나에게 어떤 의미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틸은 WP와의 인터뷰에서“나는 인간이 영생을 얻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이 자연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막대한 부를 자신들의 관심사에 쏟아 부으면서 오랫동안 연방정부의 영역이었던 여러 과학 연구분야에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세기 대부분 거대한 규모의 과학 연구는 연방 정부의 관할이었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과학은 사람을 달에 보내고 원자폭탄을 만들었으며 인터넷을 뒷받침하는 네트워킹 프로토콜을 개발했다. 그러나 이러한 연방정부의 과학에 대한 영향력이 공적자금 축소로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2010년 이후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예산은 11%가 감소했다. 수천개의 연구들이 투자비가 삭감되거나 투자 받지 못했다. 반면 과학 분야에 대한 민간 자본 비중은 급증해 생명과학 같은 특정 분야에만 투자가 몰려 지난해 86억달러까지 치솟았다.
IT 억만장자들은 연방정부가 위험 회피를 지나치게 중시하면서 의료 연구 발전에 방해만 되고 있다는 통념을 가지고 있다. 정부주도 연구가 실패하면 연구 책임자는 의회 청문회와 회계 감사원 조사에 불려나가 고초를 받게 되지만, 기업이 투자한 연구는 실패를 혁신을 위한 학습 기회로 간주해 오히려 장려를 된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태어나 북부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틸은 공상과학 소설이나 티비쇼에 푹 빠져 성장했다. 그는 1970년대와 80년대 예측했던 기술 문명이 아직까지 구체화 되지 않은 것에 실망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재단을 통해 보조금을 주고 있는 브레이크아웃연구소는 과학전 진보가 느린 것에 대한 그의 해결책이다. 틸은 대담한 아이디어를 가진 과학자들이 한두번의 실패로 경력이 끊기는 것을 막기 위해 “연구진을 기존의 연구기관에서 탈출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닉슨이 1971년 암과 전쟁을 선포했지만 지금까지도 느리게 연구가 진척되고 있다”며 “85세 이상의 3분의 1이 알츠하이머나 치매를 앓고 있지만 우리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생의 마지막 분야에 대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틸은 “나는 죽음은 항상 끔찍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과 싸우는 길을 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IT 억만장자들의 대담한 수명연장 연구 투자에 우려를 나타내는 윤리학자나 다른 과학자들이 늘고 있다. 노스웨스턴 대학 생명윤리학자 조로스는 “빠른 과학적 진보가 반드시 더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며 “과학이 결과로 산출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릴 수 있으며 가끔 우리 세대에 답을 알 수 없기도 하다”고 말했다. 스탠포드 대학 선임 연구원이자 전 생명윤리에대한대통령위원회 멤버였던 정치이론가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수명의 급격한 증가는 생존에 필요한 사람들의 의욕을 앗아가 버릴 것이며 그런 세계 속에서 사회적 변화는 정지하며 결국 나이든 독재자가 오랫동안 권력을 쥐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WP와의 인터뷰에서 “수명 연장에 대한 연구는 큰 사회적 재난이 돼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부 과학자들은 IT 억만장자들이 개인적으로 흥미 있는 분야에만 기존 학계보다 2,3배 많은 연구보조금과 월급을 주는 것은 연구의 우선순위를 왜곡시킬 수 있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노화 중단 시도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도 부정적이다. 2013년 퓨리서치센터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51%가 ‘노화를 중단하거나 역전시키는 것이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관련한 치료가 천천히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또한 3분의 2는 ‘급격한 수명연장이 자연 자원의 변형을 가지고 올 것’을 우려했다. 또 부자들만이 새로운 치료의 혜택을 볼 수 있으며, 의료진들은 이것이 사람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줄지 완벽히 이해하기 전에 치료를 제공하는 위험도 막지 못할 것이란 의견도 있었다.
무엇보다 답변자들 중 58%는 사람의 수명을 수십년 더 연장시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답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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