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남과 북, 누구를 위한 군비경쟁인가

입력
2015.04.09 17:15
0 0

최근 북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한 장의 사진으로 제대로 망신살이 뻗친 일이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 1일 조선중앙TV를 통해 자신들이 자체 제작한 경비행기라며 김정은이 직접 시험 비행하는 모습을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비행기 생산 기술력이 비약했다며 대대적으로 선전했었죠. 하지만 김정은이 앉아 있는 조종석 옆 문짝은 슬쩍 봐도 울퉁불퉁하고 노랗게 녹슬어 있어 새 비행기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에 본격 착수하자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자신들도 자체 비행기를 개발하고 있다며 반격에 나섰지만, 역으로 북한의 공군 전력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드러내는 한편의 코미디가 됐다고 꼬집었습니다. 실제 북한이 보유한 전투기 대부분은 1960년대 생산된 노후 기종으로, 스텔스기 도입 마저 추진하고 있는 우리 공군력에 비하면 턱 없이 낮은 수준입니다.

그런데 김정은의 과시용 군사 쇼(?) 사진을 보면서 문득 지난 달 미국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이 내놓은 보고서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보고서는 남북한 군사력을 2 대 11 수준이라고 비교하며 남한의 군사력이 북한에 비해 ‘절대 열세’라고 결론 내렸기 때문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전동렬 동무가 사업하는 기계공장'을 시찰했다. 조선중앙TV가 1일 공개한 관련 사진에는 김 제1위원장이 이 공장에서 만든 군용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기기를 만져보는 모습이 담겼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전동렬 동무가 사업하는 기계공장'을 시찰했다. 조선중앙TV가 1일 공개한 관련 사진에는 김 제1위원장이 이 공장에서 만든 군용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기기를 만져보는 모습이 담겼다. 연합뉴스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우리 현역 전투병은 63만 9,000명으로 119만인 북한의 54%에 불과하고, 전투기도 한국은 460대로 북한의 820대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 그친다는 등등 13개 평가항목 중 장갑차와 헬리콥터를 제외한 11개(대포, 해군 전함, 잠수함 등등)가 모두 북한 전력에 밀린다고 평가절하했습니다. 또 북한이 10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라고 능력을 인정(?)해주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 우리 군은 “오래된 무기까지 단순 숫자 비교한 것으로 실제 전투 능력을 감안한 분석이 아니므로 전혀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우리 군은 오래된 무기일수록 운영비가 많이 들고 실질 전투력은 발휘하지 못해 폐기 처리하는 대신 첨단 무기 도입에 앞장서왔다고 강조합니다. 이에 반해 북한은 노후 전력을 그대로 방치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숫자의 오류라는 것이죠. 한마디로 각 무기체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 비교로, 질로 따져보면 우리가 훨씬 우위에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나름 명망 있는 헤리티지 재단은 그런 말도 안 되는 보고서를 왜 내놨을 까요. 이에 대해 군사 전문가들은 “이른바 북한의 공포를 활용해 최신 무기를 사들이게 하려는 꼼수”라고 지적했습니다. 헤리티지 재단 등 유수의 싱크탱크들은 록히드마틴 등 유력 방산업체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받고 새로운 무기 체계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보고서를 통해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군이 이 같은 ‘무기 먹이사슬’ 체계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못해 보인다는 점입니다. 성능 개선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무기를 구입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 다시 새로운 무기를 앞다퉈 사들이고, 그 와중에 각종 비리까지 난무하는 우리 군 방위사업체계를 보면 “우리가 북한보다 양보다 질은 낫다”는 외침이 공허하게 들립니다.

지난 달 북한은 키 리졸브(KR) 연습 종료 전날 김정은이 참관한 가운데 SA 계열의 지대공 미사일 7발을 발사했습니다. 당시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 중 SA-5는 처음이었는데요, 사거리가 250 여 km로 우리 중부 지방 영공이 사정권에 둘 수 있는 나름 위력을 가진 무기죠.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방산비리로 얼룩진 공군의 전자전훈련장비(EWTS)에 빠져 있는 SA-5를 일부러 발사함으로써 우리 방위 태세를 주시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방산비리로 뻥 뚫려 버린 우리 안보 상황을 북한이 지켜봤다는 얘긴데, 우리가 북한의 과시용 사진을 보며 느꼈던 조소의 감정을 똑같이 느꼈던 것은 아닐지, 남한이나 북한 모두 누구를 위해 군비 경쟁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인지 씁쓸할 따름입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