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이 9일 대법원을 찾았습니다. 정 위원장은 이날 오후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병대 법원행정처장을 잇따라 만나 ‘취임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정 위원장은 먼저 법원행정처장에게 경쟁법 국제행사에 판사들이 참여해 각국의 당국자들과 토론을 벌일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서울고등법원에 직원을 파견해 공정위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대법원장에게도 이 같은 협력 요청을 잘 살펴달라고 예의를 갖췄답니다.
공정위가 밝힌 내용으로 보면 정 위원장의 대법원 방문은 특별할 게 없어 보입니다. 역할이 다른 국가기관 간에 협조를 잘 하자는 차원이니까요. 공정위는 그 동안에도 신임 위원장이 취임하면 비공개로 대법원장을 예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공정위의 속사정을 생각해보면 정 위원장의 방문이 예사롭게 보이지만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공정위는 ‘경제검찰’로 불리는 준사법기관입니다. 불공정행위나 담합을 일삼는 기업들의 혐의를 찾아 심판정에 세우는, 검찰 못지 않게 무서운 존재죠. 공정위는 또 이에 대해 1심 판결도 내리는 특이한 조직입니다. 여기에 불복하는 기업들은 법원의 2심으로 가서 공정위 판단에 항의하게끔 돼 있습니다.
이처럼 업무 연관성이 많은 검찰과 법원 사이에서 요즘 공정위는 소외감이 적지 않습니다. 검찰은 공정위가 형사처벌을 해달라고 요구한 사건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한편으론 공정위가 과징금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한 사건에 최근 처음으로 고발을 요청하는 등 은근히 공정위를 견제하는 분위기입니다. 법원에선 공정위가 대규모 과징금을 매긴 사건이 심심찮게 무효가 되고 있고요. 법원과 검찰에서 이런 일이 지속되면 결국 ‘공정위가 너무 오버했거나 소극적이었다’는 비난을 홀로 뒤집어 쓸 수도 있습니다.
공정위가 역대 위원장의 대법원 방문을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공정위에 이유를 물으니 “쓸 데 없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 였답니다. 스스로도 위원장의 방문이 ‘의심을 살만하다’ 여겼다는 건데, 정 위원장이 대법원 고위층을 만나 실제 무슨 얘길 나눴을 지 더 궁금해 집니다.
세종=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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