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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시청광장에서 시를 읽는 까닭

입력
2015.04.0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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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밥이 된다지만 돈 못 벌어

하지만 플라톤을, 니체를 읽는 이유

시장ㆍ돈 비판하며 다른 길 찾는 것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김수영의 시를 공부해 온 모임이 이번 주에 읽을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첫 부분이다. 이 시와 더불어 ‘풀’ ‘현대식 교량’ ‘거대한 뿌리’ 등을 읽는 모임은 이번 세미나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연다.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고 동참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식의 몸짓이라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4월의 한복판에, 적어도 김수영의 시를 읽는다면 공동체의 밀폐된 세미나실보다는 광장이 제격일 수 있다. 식민지와 해방, 분단과 전쟁, 그리고 저 빛나는 4월의 혁명과 이것이 군화로 짓밟힌 척박한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냈던 시인의 시 아닌가. 세월호 참사가 난 지 1년, 희생자를 추모하고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팽목항의 노란 깃발이 너덜너덜해져도 진상규명조차 오리무중으로 가는 상황 아닌가.

인문학 공동체는 왜 하느냐. 공동체를 꾸린다는 말을 할 때마다 듣는 질문이지만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감해진다. 인문학 공동체를 왜 하느냐는 질문은 인문학을 왜 공부하느냐는 질문과도 통한다. 누군가 인문학이 밥이 된다고 했지만, 인문학으로 돈을 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이는 공동체를 시작한 지 4년이 되도록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용돈조차 만들기 어려운 내 삶이 증명한다.

누군가는 인문학이 취업에 유리한 스펙이 된다고도 하나 이 또한 거짓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문계 대졸자의 90%가 논다는 뜻의 조어인 ‘인구론’이 나왔을 리 없다. 나라의 교육 정책을 책임지는 수장이 인문학보다 취업이 우선이라고 말했을 리 없고, 수십 년 인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쳐온 특급 철학자가 인문학을 공부하겠다는 이에게 “웬만하면 다른 길을 생각해보라”고 권했을 리도 없다. 영미권의 유명 대학원에 진학해 학위를 받을 경제적 능력 없이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정규직 취직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비정규직 인문학자의 삶은 다른 비정규직과 마찬가지로 고달프기 짝이 없다.

4월을 맞이하며 공동체에서 새 강좌 하나를 시작했다. 인문학보다 구체적으로 철학은 왜 공부하며, 어떻게 할 것이냐를 묻고 길을 더듬어가는 강좌다. 지금 이 땅에서 먹고 살아가기는 갈수록 팍팍해지는데 우리는 왜 플라톤을, 헬레니즘 철학이며 유교, 불교철학을, 칸트며 니체며, 푸코며 들뢰즈를 공부하는가. 피상적인 답은 많다. 플라톤은 서양 철학이 그의 각주에 불과할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니까, 헬레니즘 철학은 최근 각광받는 스피노자와 니체, 푸코와 들뢰즈에 큰 영향을 미쳤으니까 공부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우리가 던지는 질문은 보다 근원적이다.

삶은 늘 지리멸렬하고 고난의 연속이다. 고난을 마주한 사람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여러 가지다. 분노할 수도 있고, 좌절하며 도피할 수도 있고, 정면으로 마주치며 극복하려 할 수도 있다. 방법이 하나 더 있다. 이 고난은 무엇이며 왜 찾아 왔는가. 이 고난을 견디며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존재론적 성찰을 하는 것이다. 존재론적 성찰은 고난 속에서 찾아 들고 인문학은 이 성찰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요컨대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건 존재론적 질문을 통해 삶이 가지는 의미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이런 질문은 필연적으로 사회 이론으로 발전해야 하며 결국은 내가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답해야 한다. 삶이 늘 쉽지 않음에도 우리가 인문학을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시장과 돈이 신으로 군림하는 시대, 이를테면 들뢰즈가 인문학 공동체에서 주목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르크스가 19세기 자본주의의 지도를 제작했다면 들뢰즈는 현대 자본주의의 지도를 제작했다고 보는 것이다. 현대 인문학의 핵심은 시장과 돈을 추종하며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이를 비판하며 다른 길을 찾는 것이다. 다시 4월의 한복판이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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