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무대에 선 적이 있다. 프로 배우들과 같이 하는 ‘공식무대’였다. 극단을 운영하는 친구의 연출 작품이었다. 배우가 되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건강이 나빠져 몸이나 풀어보자는 심사로 덤벼든 게 시발이다. 공연에 큰 폐가 되지는 않았나 보다. 두 작품에 연속 출연했다. 나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배역이었다. 연기를 기술적으로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 내가 거기 있다는 게 그리 부자연스럽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몇 달 동안 공들여 빠져들었던 일에 나름 감상이 없을 수 없다. 연기를 하지 않는 게 잘 하는 연기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했다. 몸과 마음을 인위적으로 작동시켜 형식을 만들 때, 연기는 말 그대로 시늉이 된다. 어떤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있을 수 있는 것. 자신과 배역 사이의 유연한 겹침이 좋은 움직임과 소리를 운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 등. 핵심은, 부러 기술을 써 감정을 조장하는 것보다 가만히 있는 연기가 가장 어렵다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니 그건 비단 연기만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단 10분만이라도 사람은 가만히 있기 힘들다. 생각과 몸의 습관적 구동을 방기한 채 지구의 자전소리라도 음미하듯 자신을 내버려 두는 일. 무대를 내려오니 삶의 무대가 더 크다. 모든 감정을 내려놓고 나를 응시한다. 가만히 풀어놓은 숨결 안에서 또 다른 자아여, 꿈꿔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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