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확률 20% 죽음의 공포 이기고 옥산정사 이언적 유물전시관 완성
문화유산 해설사로 왕성한 활동… "죽는 날까지 가문ㆍ전통 지킬 것"
경북 경주시 안강읍에 있는 보물 제143호 옥산정사(玉山精舍). 조선 중기 문신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지은 사랑채로 독락당(獨樂堂)으로도 불리는 유서 깊은 곳이다. 이곳에는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메가폰을 들고 독락당의 유래와 이언적 선생의 학문 등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인물이 있다. 여강(驪江) 이(李)씨 옥산파 18세 주손(胄孫, 한 집안의 대를 잇는 장손자) 이해철(67ㆍ사진)씨다. 그의 해박한 지식과 조리 있는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이언적의 학문세계와 당시 시대상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저절로 떠오를 정도다.
그의 말솜씨에 매료된 관람객들은 이씨가 10년 전부터 3가지 암으로 생사를 넘나들었다는 대목에 이르면 또 한번 놀랄 수밖에 없다. 겉보기에는 전혀 암환자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업에서 은퇴하고 소일 삼아 여가시간을 보내는, 영락없는 문화유산해설사 모습이다.
이씨가 암에 걸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은 것은 2005년 8월쯤이다. 농사를 지으며 문중일을 해 온 이씨는 “맨 처음 위암이라는 말을 듣고 정말 지금 당장 죽는 게 아닌가 걱정도 했다”며 “다행히 비교적 빨리 발견돼 수술 후 관리만 잘 하면 90% 이상 완치된다고 해 수술대에 누웠다”고 말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경과도 좋았다. 다시 문중일에 몰두했다. 당시 문중에서는 독락당 회재 유물관 건립을 추진 중이었고, 이씨는 기획과 전시품 수집 등의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밤잠을 설치며 유물관 건립에 집중하던 2007년 2월, 또다시 병마가 몰려왔다. “컨디션이 좀 별로인 것 같아 병원에 갔더니 이번엔 급성 직장암이라고 했다”며 “바로 수술을 하고 나서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몇 달 지나서 이번엔 편도암이라고 했다”며 당시 위급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결과적으로는 수술이 잘 돼 목소리를 잃지 않았고, 직장암도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았지만 그 과정을 돌이켜보면 아찔한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병원에선 하던 일을 당장 그만두라고 했다. 가족들도 말렸다. 하지만 일을 멈출 수 없었다. 나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암수술 이후 과로 때문인지 상태가 악화해 한때 생존확률 20%라고 했다. 그땐 정말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암 극복을 위해 먼저 암을 알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명의 50인이 말하는 암과 국내외 의학서적 등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병은 자랑하라’,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천했다”고 말했다.
좀 움직일만하면 옥산정사에 나갔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관람객들에게도 병을 자랑했다. “병원에서 치료와 함께 암을 이긴 분들이 전수한 민간요법을 병행했다”며 “누군가 알려준 민물고기찜과 채소, 과일을 식사 대용으로 삼았고, 반신불수나 다름 없는 몸이지만 살기 위해 걸었다. 처음엔 5분, 10분, 점차 걷는 시간을 늘렸고 지금은 서 너 시간은 너끈하다”고 말했다.
그는 투병 중에도 병상일기를 쓰는 일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 동안 써 온 병상일지는 대학노트 10권 정도로 불어났다.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나중에 이 경험을 누군가 공유할 수 있고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지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살기 위해 나름 몸에 좋다는 것은 거의 다 구해 먹었다. 장뇌삼이 대표적이다. “딱 꼬집어 말하긴 그렇지만, 장뇌삼이 암극복에 도움을 준 것은 확실한 것 같다”며 “봄철 싹이 나오기 전과 가을에 땅속에 들어갈 때가 약성이 가장 좋은 것 같다”고 경험담을 늘어 놓았다.
그는 4년 전쯤 거의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지금도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저녁 모임에도 도시락을 싸 간다. 도시락을 싸 들고 가기 어려운 곳은 아예 피한다. 단전호흡도 그의 건강관리법 중 하나다. 안강읍 주변 도덕산 자옥산 등 조용하고 공기 좋은 곳을 찾아가 단전호흡을 하노라면 세상근심을 다 잊을 수 있고, 치유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조금씩 하던 술ㆍ담배도 완전 끊었다. “사실 아직도 암에 대한 공포를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그는 “설과 추석 명절 때를 제외하면 매일 2, 3시간 정도 걷는다”고 말했다.
요즘 그는 12일부터 열리는 2015 대구ㆍ경북 세계물포럼 때 옥산정사를 찾을 국내외 관람객들에게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지 고심 중이다.
각기 다른 3가지 암을 이긴 이해철씨. 그는 “3번째 암도 이겼는데 지금 죽어도 호상이란 말이 나올 것”이라며 “죽는 그날까지 가문과 전통을 지키는 소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성웅기자 ks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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