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늘 선망의 직업이었지만…
초등생이 '7급공무원이 희망'이라고
권력이나 출세와는 거리 멀지만
안정적이고 공익 봉사하는 매력
공무원이 선망의 직업이 아니었던 적은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까지 인기 절정을 구가했던 적도 별로 없다.
안정을 선호하는 어른들이야 공무원이나 교사 같은 직업을 늘 최고로 꼽았지만 그래도 젊은 층들은 공무원이 되려는 시도 자체를 왠지 답답하고, 도전의식이나 패기 없는 행동쯤으로 여기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180도 달라졌다. 심지어 어느 초등학생이 장래 희망에 ‘7급 공무원’이라고 적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 “자식이 공무원이 되면 두 발 뻗고 잘 수 있겠다”고 말하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
고위직으로 향하는 관문인 고시는 그렇다손 치자. 권력이나 출세와는 거리가 다소 먼 중하위직 임용시험이 지금은 더 치열하다. 지난해 7급과 9급 공무원 시험의 평균 경쟁률은 약 80대 1에 달했다. 7급 공무원은 730명을 선발한다는 공고에 6만1,252명이 원서를 냈고 9급은 2,150명 모집에 16만4,887명이 원서를 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4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13년 13~24세 청소년들이 가장 근무하고 싶어하는 직장이 국가기관(28.6%)이었다고 하니 높은 경쟁률은 당연한 듯 보인다.
명문대생도 대기업보다 안정성 추구
지난해 12월부터 일반행정직 9급 공무원 공채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김세미(가명ㆍ25)씨의 전공은 원래 컴퓨터공학이다. 그는 대학 4학년 때 취업 준비를 하면서 번번이 서류전형에서 떨어졌고 결국 진로를 공무원 쪽으로 선회했다. 그는 “4년 내내 컴퓨터 공학이 적성과 안 맞는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고 막상 이 분야로 취업하려고 하니 되지도 않았다. 학교 취업지원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결과 제가 원하는 건 안정적인 직업과 시간적 여유라는 걸 알게 돼 공무원 준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2011년 7급 공무원 공채에 합격한 윤세명(가명ㆍ34)씨는 무려 8년 동안 공무원 시험을 치렀다. 대학 재학 시절엔 고위직 공무원을 꿈꾸며 행정고시를 6번 치렀지만 합격하지 못해 결국 7급으로 하향 조정해 시험을 봤다. 윤씨는 “아버지도 공무원이셔서 어렸을 때부터 안정적인 공무원을 꿈꾸게 됐다. 경쟁이 더 심하고 일찍 그만 둘 가능성이 높은 사기업보다는 노후를 생각했을 때 공무원이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5급 공무원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7급에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다.
공무원을 꿈꾸는 이들의 첫 번째 이유는 무엇보다 ‘안정성’이었다. 통계청의 ‘2014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13~24세 연령대에서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인은 ▦적성·흥미가 34.2% ▦수입 27.0% ▦안정성 21.3%이었다. 안정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경향은 중학생 16.4%, 고등학생 17.2%, 대학생 24.3%로 상급학교로 갈수록 커졌다.
꼭 안정적이어서만 공무원을 택하는 것도 아니다. 공무원하면 ‘무사안일’ ‘얄팍한 권력’ ‘뒷돈’같은 퇴행적 이미지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요즘 2030세대 공무원들은 국민생활과 직결된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 자체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윤세명씨는 “같이 일하는 선배공무원이 장애인 무료 셔틀 버스를 기획해 노선까지 다 짜는 모습을 보면서 공무원 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부심 같은 걸 갖게 됐다”면서 “보고한 내용이 받아들여져 개선이 되거나 기획한 정책이 실현돼 시민들이 혜택 누릴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공무원 되려고 학교 그만 두기도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전공을 바꾸거나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2013년 서울시 7급 공무원으로 임용된 황지원(가명ㆍ27)씨는 공무원 준비를 위해 아예 자신의 전공을 바꿨다. 서울의 한 대학 국어국문학과에 1년을 다니다가 “요즘은 모두 맞벌이를 하는데 여자들이 일을 하면서 아이도 잘 키우려면 육아휴직을 비교적 잘 쓸 수 있는 공무원이 돼야겠다”는 생각에 행정학과로 전과했다.
2008년부터 공채시험에 응시했던 황씨는 불합격이 계속되자 2012년에는 7급 시험에 응하기 전 9급 시험을 봤고 결국 모두 합격했다. 이런 황씨에게 주변 친구들은 “젊은 나이인데 너무 현실에 안주하려는 선택을 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황씨는 “만약 그 때 7급에서 불합격했더라도 9급으로 쭉 일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시 불안정한 시험에 뛰어들기 보다 안정적인 자리에서 일하는 것을 택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서울시내 한 지구대에서 순경으로 근무하고 있는 이경선(가명ㆍ25)씨는 대학 재학시절 경찰공무원 시험을 치르고 합격하자 아예 다니던 대학을 그만뒀다. 원래 초등학교 교사가 꿈이었던 이씨는 교대에 입학하기 위해 수능시험을 3번이나 봤지만 원하는 곳에 입학하지 못했다. 다른 대학에 진학해 1년 다녔지만 2012년 휴학을 하고 바로 경찰 시험을 준비해 2013년에 결국 경찰배지를 달았다.
그는 서울의 한 외고출신이다. 그에게 주변 사람들은 “왜 대기업에 들어가지 않았느냐”며 놀란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씨는 “성격에도 맞고 앞으로는 여성청소년 부서에서 경찰전문가가 되는 게 목표라 어렸을 때 꿈이었던 선생님과도 맞는다”라며 만족해했다.
김소은(가명ㆍ24)씨도 학교를 그만두고 일반행정직 9급 공무원을 준비 중이다. 생명과학도를 꿈꿨던 김씨지만 연구원이 되려면 적어도 서른 살까지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부담이 됐다. 김씨는 “현실적으로 경제적 뒷받침이 되지 않았고 그냥 취직을 하기엔 사기업은 학벌과 다양한 스펙이 필요한 것 같아 시험 준비에만 매진하면 되는 공무원이 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원래 다니던 학교는 수도권에 있는 한 4년제 사립대였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대학 졸업장이 중요한 건 알지만 학교에 내는 등록금으로 차라리 일찍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 자퇴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접근성 높지만 만만치 않은 공무원
공무원이 ‘신의 직장’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만만한 직업은 절대 아니다. 단지 ‘오래 다닐 수 있는 직장, 보다 편한 일자리’라는 생각으로 공무원이 된 이들은 예상 밖으로 센 업무 강도에 당황하기도 한다. 윤세명씨는 “공무원이 밖에서 보는 것처럼 편한 직장이기보다 업무강도가 세 야근하는 날이 많다”고 말했다. 황지원씨는 “편하게 일한다는 이미지가 있어서인지 민원인을 진심으로 돕고 싶어 정보를 전해도 ‘이거 대충한 거 아니냐’는 부정적 반응이 돌아올 땐 힘이 빠진다”고 털어놨다.
공무원이 되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 하지만 선배 공무원들은 2030세대의 공무원 열풍에 대해 몇가지 조언을 잊지 않았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김지운(가명ㆍ43)씨는 30대 끝자락에 7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김씨는 원래 공무원이 꿈이었지만 20대 때 고시 합격이 쉽지 않아 대기업에 취직했었다. 그는 “저도 이윤추구 성격이 강한 기업체가 맞지 않아 다시 시험을 치렀던 것”이라며 “20대들이 공무원을 많이 지망하는 건 이윤추구보다 공익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로 공공분야 확대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27년간 공직생활을 해 온 한 50대 공무원은 “많은 청년들이 주민들과 나라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을 꿈꾸는 것은 좋지만 아무런 직업 의식 없이 그저 안정성만 보고 들어오려는 것은 우려된다”고 말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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