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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연말정산이 남긴 뒤끝

입력
2015.04.0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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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엔 끝이 '끝'이 아닙니다. 뒤끝뉴스는 취재 그 뒷이야기, 기사 그 다음 스토리를 전합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연말정산 보완대책 당정협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연말정산 보완대책 당정협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연말정산 보완대책을 발표한 7일, 밤 늦게까지 기획재정부 세제 담당 공무원들은 사무실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대책은 아침 일찍(오전 9시) 공개했지만 다음날 아침 조간 신문들의 논조가 염려됐던 것입니다. 간부급 공무원들은 각 언론사의 기자들에게 “(이번 대책을 마련하느라) 직원들이 정말 고생했는데, 잘 좀 써달라”고 거듭 당부를 했습니다.

그렇다고 기사 논조가 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사실 공무원들이 정말 고생한 건 맞는 것 같습니다. 4개월 간 밤낮 없이 1,600만 납세자의 연말정산 기록을 슈퍼컴퓨터에 돌리고, 나오는 추측성 보도마다 해명하랴, 다시 불만 안 나올 대책을 만드는 데 두 배 세 배 공을 들였을 테니까요.

연말정산 파동의 발단은 지난 1월부터였습니다. 매년 많게든, 적게든 ‘돌려받는 가외 수입’으로 여겼던 연말정산이 올해는 도리어 토해내는 돈으로 바뀐 경우가 주변에서 심심찮게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언론마다 ‘세금폭탄’이라는 용어가 오르내리고, “세수 부족을 메우려고 회사원들의 유리지갑을 털어간다”는 불만이 쏟아졌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1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연말정산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 대해 “정부가 연말정산 설계의 실패를 인정했다”고 말했다. 이후 이어진 당정 회의에서 연말정산의 문제점을 고쳐 더 거둔 세금을 다시 돌려주는 식의 대책이 마련됐다. 사진은 8일 김 대표가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1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연말정산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 대해 “정부가 연말정산 설계의 실패를 인정했다”고 말했다. 이후 이어진 당정 회의에서 연말정산의 문제점을 고쳐 더 거둔 세금을 다시 돌려주는 식의 대책이 마련됐다. 사진은 8일 김 대표가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여론에 민감한 정치인들은 부랴부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는 정부를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섣부른 정책이 국민을 괴롭히고 있다”는 식이었습니다. 정황상 여당의 강한 요구로 정부가 움직였을 게 뻔한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연말정산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가진 다음날(1월21일) 아침 “정부가 연말정산 설계의 실패를 인정했다”며 “당장 올해부터 시정되도록 해달라”고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어진 당정 회의에서 연말정산의 문제점을 고쳐 더 거둔 세금을 다시 돌려주는 식의 대책이 마련됐습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이번 보완대책입니다. 떠들썩했던 연말정산 세금폭탄을 1,619만명 전부 일일이 계산해봤더니 평균에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정부가 애초 예상했던대로 연봉 5,500만원 이하 근로자의 세 부담은 평균 3만1,000원씩 줄었으니까요. 다만 205만명은 1인당 8만원씩 토해 내야 했는데 이는 자녀가 있는 가정에 세금을 깎아주는 소득공제 방식을 세액공제로 바꾸면서 감면 규모가 줄어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쨌든 205만명이 토해 내는 세금을 없애고자 대책을 마련하다보니 총 541만명에게 세금을 돌려주게 됐습니다. 300만명 이상은 원래도 토해내는 돈이 없었는데, 이번 대책으로 조금씩 더 돌려받게 된 셈입니다.

이왕 발표된 대책을 의미 없다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실제로 엄청난 ‘폭탄’이 있지도 않았던 일에, 온 나라가 난리를 피운 데 대한 자성과 교훈은 분명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에서 맨 먼저 정부와 정치권의 직무유기를 지적했습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주요 세제개편에서 정부의 임무는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이들에게 정확하고 투명한 정보를 미리 알리고 이해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 개정 권한을 쥔 국회가 정부의 방안을 국민 입장에서 면밀히 검증해야 할 의무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결국 이번 연말정산 파동에선 둘 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셈입니다.

김 교수는 “아직도 우리나라 세제에는 비밀주의가 너무 강하다”고 지적합니다. 세금 관련 법안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국회 기획재정위 내 조세소위원회는 여전히 대부분 비공개로 열리고 있습니다. 이번 연말정산 개편 과정에는 흔한 공청회도 한 번 없었습니다. 정부와 국회가 알아서 할 테니 국민들은 따라라 하는 식의 일처리가 엄청난 반발을 산 셈인데, 그 반발에 웬만해선 하지 않는 소급적용까지 하게 됐으니 참 안타까울 노릇입니다.

기재부 내부에선 지금도 ‘평균으로 따져 보면 결국 우리가 옳았다’는 정서가 적지 않습니다. 정부는 “5,500만원 이하 소득자의 85%는 예상대로 세금을 덜 내게 됐다”는 점을 7일 발표 때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랐던(1인당 8만원씩 더 내야 했던) 나머지 15%가 무려 205만명이나 된다면, ‘평균’만 얘기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사회 공동의 이익을 위해 일부 희생이 불가피하다’며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당하는 것은 같은 매라도 전혀 충격이 다를 겁니다.

정부가 연말정산 보완대책을 발표한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한국납세자연맹에서 직원들이 검증을 마친 연말정산 환급서류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연말정산 보완대책을 발표한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한국납세자연맹에서 직원들이 검증을 마친 연말정산 환급서류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로 앞으로 세금을 건드는 일이 더욱 어려워질 거라 우려했습니다. 매년 기왕 낸 소득세를 조금씩 더하고 빼주는 연말정산에도 이 정도로 반발이 심한데 다른 세금개편은 오죽하겠냐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 반발에 밀려 정부와 여당이 이미 냈던 세금까지 되돌려 주는 선례를 남겼으니 앞으로도 ‘세금 돌려내라’는 요구는 더욱 자주 나올 게 뻔합니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앞으로 (국민 대다수를 대상으로 한)일반적인 소득세는 건드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세제를 전공한 학자들은 “세금은 사실상 정치의 영역”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온갖 효율을 숫자로 풀어 제시해도 결국엔 경제논리보다 정치논리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에서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의 세금 관련 보고서에는 그 당시의 정치ㆍ경제적 상황에 대한 분석이 종종 따라 붙습니다. 최대한 다양한 변수를 신중히 따져보고 결정해야 하는 게 세금이라는 뜻이겠지요. 앞으로도 계속 세금을 다룰 정부 공무원들과 국회의원들도 이런 세금의 의미를 꼭 새겼으면 합니다.

세종=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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