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의 동전 뒷면은 똑같지만 앞면은 나라마다 도안이 다르다. 유럽연합 나라별로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내용을 넣어 만들게 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1, 2유로는 독수리 국장(國章), 10ㆍ20ㆍ50센트는 브란덴부르크 문, 1ㆍ2ㆍ5센트는 참나무 잎이 새겨져 있다. 독일의 국장과 1ㆍ2차 독일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문을 넣은 것은 쉽게 이해되지만 참나무 잎은 의외다. 하지만 게르만 민족이 참나무 숲을 신성시하고 제사 올릴 때 꼭 참나무 잎이 있어야 했다는 걸 알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 주최국 독일은 우승자에게 독일산 참나무(robur oak)잎으로 만든 월계관을 씌워줬다.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에게는 히틀러가 직접 월계관을 씌워줬고, 참나무 묘목도 함께 수여했다. 이 묘목은 손 선수 모교인 서울 만리동 옛 양정고 교정에 심어져 우람한 거목으로 자랐다. 나중에 이 나무는 독일참나무가 아니라 미국 동부가 고향인 핀오크(pin oak)로 밝혀졌지만 어쨌든 독일인들의 참나무 사랑은 유난하다.
▦ 독일인들이 좋아하는 또 하나의 나무는 보통 보리수로 부르는 피나무다. 독일말로는 린덴바움. 슈베르트의 가곡 보리수는 바로 이 나무를 노래했다. 그러면 독일의 국목(國木)은 어느 것일까. 누구는 참나무, 누구는 린덴바움이라고 하는데, 독일에 국목을 지정한 규정은 따로 없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벚꽃을 좋아하지만 벚나무가 일본 국목은 아니다. 그러고 보니 무궁화도 딱히 국화로 지정한 규정은 없는 것 같다.
▦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이 소나무 국목 지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결의안을 발의하고 관련 토론회도 이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지조, 절개, 충절을 상징하고 한국인이 좋아하는 나무 부동의 1순위이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국격 제고, 자긍심 고취 등의 취지가 좀 걸린다. 애국주의 그림자가 어른거려서다. 대형산불과 산림병충해에 취약하다는 점에서 과도한 소나무 애호를 경계하는 견해도 있다. 소나무 사랑은 좋지만 지나친 상징화는 아닌 것 같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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