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직장인 비애 '사축동화'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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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직장인 비애 '사축동화'를 아시나요

입력
2015.04.0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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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린시절로 돌아갈래, 월급 깎이고 수당 못받는 현실

디자이너 꿈 접은 20대 사축… 지옥철 출근, 점심 저녁은 도시락

박봉에 여친과 저축도 하지만 결혼자금 부족해 전업 ·귀향 고려

의류업체 직원 시모노 히데오씨가 늦은 밤 피곤한 몸을 이끌고 JR야마노테선 하라주쿠역으로 향하고 있다.

“저녁 노을이 희미해진 사축(社畜ㆍ회사가 사육하는 가축)씨♪~ 정시퇴근은 언제인가요?~”“감산(減産) 감산~ 긴 불황~ 차차차? 나는 회사의 장난감~?” “내 이름은 사라지고 직장에선 파견(비정규직)~ 파견으로 불린다네~♬”

요즘 일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사축동요’구절들 이다. 정규직 아르바이트 구분 없이 자신의 가혹한 작업현장과 그 속에서의 비애를 동요 선율에 담아 인터넷에 올리고, 이를 공감하는 직장인들이 가사를 덧붙이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와 유사한 일본의 ‘사축동화’(社畜童話) 시리즈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사축동화란 일본 샐러리맨의 현실을 유명동화 스토리를 비틀어 풍자하는 짧은 글들로 인어공주, 금도끼 은도끼, 성냥팔이 소녀, 백설공주 등이 패러디 소재로 등장한다. 결말은 하나 같이 우울하다.

인어 공주는 이렇다. “인어공주는 마녀에게 정직원이 되고 싶다고 소원을 빈다. 그러자 마녀가 '우리 회사로 이직하라'고 권한다. 조건은 인어공주의 목소리를 반납하는 것. 마녀와 계약한 인어공주는 정직원이 된다. 하지만 곧 월급은 깎였고 야근수당도 받지 못한다. 휴일도 사라졌다. 부당한 대우에 맞서 노동청에 신고하려 했지만 목소리를 잃은 뒤였다.”

● “집이 회사에서 가까우니 새벽 2시까지 근무하라”

도쿄 젊은 직장인 삶이 과연 얼마나 사축동화와 비슷한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6일 밤 의류ㆍ쇼핑의 메카인 하라주쿠(原宿). 어깨를 늘어뜨린 채 퇴근길을 재촉하는 한 직장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사축인가요?”

“당연히 사축이다”며 웃음을 터뜨린 20대 후반 직장인을 인근 카페로 데려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4년 전쯤 익명사이트‘2채널’에서 그 말이 유행했어요. 니트족(NEET族ㆍ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무직자)들이 취업에 성공하고 사회에 잘 적응하는 사람들을 질투하기 위해 그렇게 표현했죠. 너희는 회사에 길들여지는 가축일 뿐이란 야유가 담긴 용어인데, 지금은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자괴감을 표출하는 단어로 더 많이 사용합니다.”

대학에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한 시모노 히데오(下野秀夫ㆍ29)씨는 디자이너의 꿈을 포기하고 중견의류업체에서 7년째 납품관리 담당으로 근무 중이다. 유명브랜드에 취업하려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갈 만큼 어려운데다, 직접 창업하기엔 경기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택한 직업인데 졸업동기 중 가장 빠른 취업이었다. 도쿄 시나가와(品川)에서 ‘지옥철’을 타면 전형적인‘사축’의 일상이 시작된다. 박한 임금 때문에 점심과 저녁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 직접 싸온 도시락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반찬은 야키사바(구운 고등어)에 냉동만두. 정시퇴근이 저녁 7시지만 밤 12시20분 JR야마노테선(山手線) 막차를 ‘가케코미’(전철 문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것) 하고서야 일과가 끝난다. 토요일이라고 예외는 없다. 주6일 근무는 기본. 그래도 자신은 형편이 양호하다고 말한다.

“제 친구가 새벽 2시까지 매일 야근을 하다 쓰러졌어요. 집이 회사에서 10~15분 거리로 가깝다는 이유로 사장이 야근을 강요했죠. 손찌검만 안 했지 영업실적이 안 좋으면 1시간 동안 서서 추궁 받기 일쑤였습니다. 야근수당도 못 받고 정신적 스트레스로 업계를 떠났어요.”

이게 모두 정사원들의 경험담이다. 고용주 입장에선 시급으로 꼬박꼬박 계산하는 아르바이트 보다 정사원 쓰고 시간외 수당을 안주는 편법이 더 싸게 먹힌다고 한다.

● “35세까지 돈 못 모으면 결혼 포기”

미래는 더 걱정이다. 시모노씨는 35살 때까지 500만엔~1,000만엔 정도 모아야 결혼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애가 생기면 지금의 여자친구가 일을 할 수 없게 되니 20만엔 조금 넘는 자신의 월급만으론 키우기 힘들다. “아이는 하나 키우기도 힘듭니다. 여자친구와 절반씩 매달 5만엔을 저축하지만 목표액 달성도 한참 무리지요. 거실도 있는 2LDK(식당과 부엌, 방 2개를 갖춘 집)에 살기 위해 도쿄를 벗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여의치 않으면 업종을 바꾸거나 귀향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시골은 도쿄보다 물가가 싸고 임금은 더 낮지만 일자리도 도시보다 많다. 결정적 이유는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면 되니 주거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일본 젊은이들은 남녀가 서로 절약하고 뭔가를 포기하면서까지 결혼을 할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강하다”면서 “연애만 하는 건 다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 ‘관리직 사축’ ‘무늬만 관리직’도 등장

일본 직장인의 ‘저녁이 없는 삶’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추세다. 후생노동성의 월별 근로통계조사에 따르면 정규직만해도 지난해 주당 3시간(연 173시간) 잔업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보다 연간기준 7시간 늘었고 1993년 통계실시 이후 최장이다. 여기엔 일본 직장문화가 한 몫 한다. 내각부의 조사에선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의 절반이상이 “상사는 잔업하는 부하를 높이 평가한다”고 답했다. 정규직 16%가 유급휴가를 1년에 단 하루도 떠나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

지난주 아사히(朝日)신문은 과로사한 47세 가장을 소개했다. 그의 부인은 “일이 밀려있다, 할 일이 꽉 찼다”며 퉁퉁 부은 얼굴로 출근하던 마지막 얼굴을 잊지 못한다. 유통업체에 근무하던 남편은 그날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쓰러진 건 입원중인 어머니를 문병 갔던 병원 대합실이었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거래처와 통화한 기록이 남겨져 있다. 과장으로 승진한 남편은 “열심히 일해 회사가 성공하면 우리 살림도 안정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사망 전 2개월 동안 조근(朝勤)ㆍ잔업은 월평균 140시간에 달했다. 하지만 초과근무수당은 한 푼도 없었다. 과장은 회사경영에 관여하고, 스스로 노동시간을 결정할 수 있는 ‘관리감독자’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회사 경영은커녕 일하는 시간도 자유롭게 결정할 권한이 부여되지 않았다. 허울뿐인 관리직이었다. 아내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잔업이 계속돼도 과장이란 직함 때문에 일을 팽개칠 수 없었던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또 다른 도쿄의 20대 남성은 작년 봄 대학을 졸업하고 부동산회사에서 취업했다. 30만엔의 높은 기본급이 선택이유였다.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9시 폐점 후에도 물량정보를 부동산사이트에 입력하는 일이 이어졌다. 퇴근은 밤 11시를 넘겼고, 입사 다음달 쉰 날은 단 이틀. 불면증에 시달리니 일과시간 머리가 멍했다. 지난해 7월 회사를 그만두고 “일한만큼 돈을 받는 정직한 회사가 일본에서 늘어나야 한다는 여론을 만들고 싶다”며 도쿄지방재판소에 못 받은 추가근무 수당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심야수당 등 회사의 미지불액은 100만엔에 달했다.

도쿄 "샐러리맨의 성지"인 JR신바시역에 붙었던 포스터. "가자, 날짜변경선의 저편으로"라고 씌어있다. Aol News

● “우리가 정시퇴근하면 일본의 밤 어두워져”

최근 ‘신칸센 사축’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본정부는 시속 500㎞로 레일 위를 뜬 채 달리는 ‘꿈의 초특급’리니어 신칸센을 착공했다. 첫 구간은 도쿄 시나가와에서 나고야(名古屋)시까지 286㎞. 12년 후 완공되면 도쿄와 나고야 사이 이동시간은 40분으로 단축된다. 나고야 영업지사 직원이 아침에 도쿄에 와 본사회의에 참석한 뒤 점심은 나고야에서 먹고, 다시 저녁엔 도쿄에서 고객을 만난 후 밤 11시 열차를 타고 나고야 집에 자정쯤 귀가하는 현실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공간엔 “악몽의 리니어”“고용주 편리한대로 생각하는구나”등 벌써부터 반발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JR신바시(新橋)역에 등장한 포스터는 직장인들의 분노를 건드렸다. “가자꾸나, 날짜변경선의 저편으로”“되돌아온다, 몇 번이든”“우리들이 정시퇴근하면 일본의 밤은 어두워진다” 등 자극적인 문구가 ‘샐러리맨의 성지’로 불리는 신바시역에 등장했으니 가뜩이나 피로에 찌든 직장인들이 분노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한 업체가 잔업에 지친 사축들을 응원한다는 취지로 제작한 공익광고였지만, 결국 그 포스터는 사라졌다.

직장문화에 관한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 이시하라 소이치로(石原壯一郞)는 “일의 괴로움과 무관한 아이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맞아떨어져 사축동요ㆍ동화가 생겨났다”며 “옛 직장인이라면 사축동요 같은 개사곡을 술자리에서 부르며 스트레스를 풀었겠지만, 지금 젊은이들은 에도(江戶)시대 밤중에 몰래 장군에 관한 욕을 벽에 낙서하는 감각으로 인터넷에 올리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원이 있어야 회사도 존재한다는 것을 망각한 경영자가 너무 많다”며 “경기가 좋아져도 그런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사축동요ㆍ동화는 계속 태어날 것”이라고 꼬집었다.

도쿄=글·사진 박석원특파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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