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 다큐영화 찍는 황윤 감독… 공장식 사육 다룬 신작 베를린 초청
돼지 출생에서 도살까지 모든 과정… "농장들 공개 꺼려 촬영 쉽지 않았죠"
돈가스와 삽겹살은 남녀노소가 즐겨 찾는 음식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 음식재료인 돼지가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직접 보거나 잘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런 궁금증에서 시작해 돼지의 삶에 관심을 갖고 공장식 축산의 대안을 찾아나선 이가 있다. 야생동물 다큐멘터리 3부작 ‘작별’, ‘침묵의 숲’, ‘어느 날 그 길에서’로 부산국제영화제, 야마가타 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이미 국내외 영화계에서 호평을 받은 황윤(42) 감독이다.
강원도의 한 농장에서 태어난 새끼 돼지 ‘돈수’의 성장과정과 채식을 어려워하는 남편(김영준 야생동물 수의사), 아들 도영을 설득하는 과정을 담은 황 감독의 생활밀착형 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가 오는 5월 개봉을 앞두고 독립 영화제 등을 통해 관객을 맞기 시작했다. 전주국제영화제, DMZ국제다큐영화제에 소개된 이 영화는 제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됐고 서울환경영화제 한국환경영화 경선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황 감독은 최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평소 돈가스를 즐겨 먹었지만 돼지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2011년 구제역 살처분 대란을 보며 처음으로 돼지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힘든 작업이었지만 그간 작품 중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 동안 야생동물에 집중해온 그는 농장동물에 대해 섣불리 영화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임순례 감독으로부터 관련 다큐멘터리가 꼭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었고 집에 꽂아두고 읽지 않았던 책 ‘육식의 종말’을 단숨에 읽고 촬영을 결심했다.
2011년 제작을 시작한 이후 완성될 때까지 무려 4년이라는 기간이 걸렸다. 먼저 촬영을 허락하는 농장 자체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농장 내부를 공개하는 것을 농장주들이 꺼려했기 때문이다. 또 공장식 축산이 아닌 대안으로 제시할 농장을 찾는 것도 커다란 과제였다. 그의 영화에는 공장식 축산과 작은 생태 농장에서의 새끼 돼지 출산장면부터 그들이 도살되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담겨 있다. 특히 생태 농장에서의 어미돼지 ‘십순’의 출산 장면과 모성애, 막내 ‘돈수’의 성장 과정은 절로 엄마 미소를 짓게 하는 장면들이다.
다른 다큐멘터리와 다른 점은 가족에게 밥상을 차리는 주부, 엄마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다. 아들 도영이와 함께 농장을 찾아 돼지를 직접 보여주고 우리가 먹는 고기, 햄, 소시지가 어디서 오는 지 설명해 준다. 또 야생동물 구조 전문가이지만 농장동물에는 관심을 두고 싶어하지 않던 남편의 변화도 담아 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공간에서 오물을 뒤집어 쓰고 사는 돼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 소시지를 먹고 싶어하는 아들, 치킨과 삼겹살을 먹으며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남편이 음식에 대한 선택권을 달라는 요구는 관객들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또 웃음을 안겨주며 공감을 일으킨다.
“공장식 축산에 대한 설명적 다큐멘터리는 국내외에 이미 많습니다. 하지만 이를 자기의 삶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웠고, 또 적용한다고 해도 3일, 3주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각자의 삶에서 공장식 축산, 채식 문제를 고민해주기를 바랐습니다.”
황 감독이 찾은 대안 농장도 하지만 돼지에게 완벽한 곳은 될 수 없다. 새끼 돼지 중에는 마취 없이 거세를 당하다 죽기도 하고 또 결국 고기로 팔려나가기 위해 공장식 축산의 종착지와 같은 도축장으로 가게 된다.
한편 총 3,000만원의 개봉후원금을 목표로 추진된 크라우드펀딩은 지난달 성공적으로 마감됐다. 그만큼 공장식 축산에 대한 우려와 관심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돼지, 닭들이 땅을 밟을 수 있고 햇빛을 쬐고 바람을 맞을 수 있다면 바이러스에 이렇게 취약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결국 밀집식 사육으로 키운다면 구제역 등의 문제는 해소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 감독은 그렇다고 모두에게 당장 채식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동물을 먹더라도 적어도 무엇을 어떻게 어떤 마음가짐으로 먹느냐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고기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생산자들이 보여주지도 않고 또 우리가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물의 삶이 결국 우리의 삶, 행복과 연결되어 있죠. 먼저 동물복지형 농장을 늘리고 또 우리가 먹는 양을 줄이면 농장 동물들의 삶이 달라지고 지구 온난화 문제도 조금씩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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