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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안심’의 흥행이 남긴 ‘근심’

입력
2015.04.0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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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엔 끝이 '끝'이 아닙니다. 뒤끝뉴스는 취재 그 뒷이야기, 기사 그 다음 스토리를 전합니다.

지난 한 달간 신문 경제면에 거의 매일같이 이름을 올린 안심전환대출. 변동금리대출 또는 이자만 갚던 대출을 저금리(연리 2% 중반대) 원리금 동시상환 고정금리대출로 바꿔주는 상품입니다. 그 안심전환대출 신청 기간이 지난 3일로 끝났습니다. 이제 안심전환대출 열풍이 남긴 성과와 과제를 짚어 볼 시간이 왔습니다.

칭찬부터 하겠습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 이름 참 잘 지었습니다. 공모를 통해 정했다고 하던데, 작명센스에 박수를 보냅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부기관 이름이나 정부 정책명에 행복, 만족, 희망과 같이 주관적 의미를 가진 단어를 쓰는 걸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만, 효과 측면으로만 볼 때 이번 안심전환대출은 ‘고정된 저금리 상품으로 전환하는 경우 큰 걱정 없이 원금과 이자를 갚아 나갈 수 있다’는 취지가 ‘안심’이라는 말로 확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흥행의 최대 요인은 낮은 금리였습니다만.

좋은 이름만큼이나 성과도 괜찮았던 것으로 평가됩니다. 우선 흥행면에서 대박을 쳤습니다. 1차 한도 20조원이 나흘 만에 동나면서, 정부가 부랴부랴 2차 한도 20조원을 준비했습니다.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신도시의 은행 매장에 긴 줄이 늘어서기도 했습니다. 최종 집계 결과 신청금액은 33조 9,000억원, 신청자는 약 34만 5,000명이었습니다. 정부 정책 하나로 30만명 넘는 이들이 혜택(이자 절감)을 봤다면, 누가 뭐라 해도 당연히 좋은 일이겠지요.

정부 입장에서도 국민에게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기회였을 겁니다. 게다가 선거(4ㆍ29 재보선)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표심에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니 흐뭇해할 분들도 많겠습니다.

자, 그러면 좀 더 멀리 보겠습니다. 지금 단계에서 괜찮은 정책으로 평가받는 안심전환대출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를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을까요? 일단 어느 정도 긍정적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안심전환대출은 신규대출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변동금리상품을 고정금리로 갈아타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계대출 총량이 증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원리금 동시 상환 대출 비율을 올려 원금이 상환되는 속도를 높였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가계대출 총액이 줄어드는 효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금융위원회가 예상하는 가계대출 총량 감소분은 1년에 약 1조원 정도입니다. 가계대출이 1,000조원을 넘은 시점에서 1조원은 미미한 수준일 수 있지만, 정부가 늦게나마 가계대출을 줄이는 정책을 제대로 실행했다는 점은 평가받을 만합니다.

결과적으로, 정부 입장에선 가계대출 관리를 하고 생색도 낼 수 있고, 안심대출을 받은 34만명은 이자 비용을 아끼게 되고…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구도겠군요. 물론 안심전환대출 재원 마련을 위해 발행되는 주택저당증권(MBS)을 떠안아야 할 은행은 좀 마음고생을 하게 되겠습니다만.

칭찬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부터 좀 어두운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애초 금융당국이 안심전환대출을 기획하면서 안심전환대출 대상이 될 것으로 봤던 가계대출은 약 200조원입니다. 갈아탈 수 있는 조건이 되는 대출액이 그 정도였단 말입니다. 그런데 실제 안심전환대출 신청이 들어 온 규모는 33조 9,000억원입니다.

이 수치가 뭘 말하는 걸까요? 대출자 입장에서 이번 안심전환대출의 이율은 파격적이었습니다. 연리 4%대 이상인 경우가 많은 기존 금리를 연리 2%대로 낮춰주겠다는 얘긴데, 가령 1억원을 빌렸다면 매년 절약할 수 있는 이자가 200여만원에 이릅니다. 원리금을 같이 갚을 수만 있다면, 갈아타지 않을 이유가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에 갈아타기를 포기한 166조원 차주(借主)들의 생각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첫째 안심전환대출 제도 자체를 몰랐거나, 둘째 지금 큰 돈을 상환하는 것보다 다른 용도에 돈을 쓰는 것이 좀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거나, 셋째 자금사정이 어려워 원리금 동시상환이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한 달 동안 미디어에서 뉴스가 줄기차게 나왔으니 몰랐을 가능성은 매우 낮고, 지금같은 저금리 상황에서 2% 포인트의 금리차를 넘어설 투자처를 발견하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166조원의 절대 다수는 돈 갚는 것을 미루고서라도 어쩔 수 없이 높은 이자를 무릅쓸 수밖에 없는 사람, 다시 말해 원금 상환 여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분들의 대출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1,000조원을 돌파한 가계대출에 대한 우려가 하루이틀 일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가계의 경우 이렇게 초저금리 당근마저 먹히지 않을 정도로 자금 사정이 빡빡하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집을 담보로 대출한 분들의 상당수는 지금 이자를 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는 말입니다. 이자를 겨우 갚는 대출자가 많다는 것은 국가 전체적으로도 큰 위험 요소일 것입니다. 안심전환대출이 가계대출의 ‘질적 수준’을 여실히 드러낸 것입니다.

또 다른 문제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안심전환대출의 기획과 실행을 주도한 곳은 금융위원회입니다. 금융위원회가 1년 6개월 동안 준비한 작품이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안심전환대출의 실시간 현황을 점검했고, 은행을 독려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누가 봐도 ‘관치’겠군요. 안심전환대출은 관치상품이고요. 금융당국은 관치가 아니라 정책적 수단이라 말하겠지만.

상당한 성공을 거두긴 했습니다만, ‘성공한 관치’를 과연 칭찬만 해줘야 할까요? 시장왜곡, 낙하산 인사, 금융시장 경쟁력 저하 등의 부작용을 낳았던 과거 관치 폐해가 워낙 컸기에 하는 말입니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금융기관들의 자율적인 노력을 통해서나 정상적인 시장활동 안에서 금융의 문제를 해결하기가 참 어려운 상황인가 봅니다. 금융이 관치에 길들여진 현실, 관치라고 손가락질 하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할 수단은 관치밖에 없는 묘한 상황, 여전히 관치가 성공해야만 금융시장의 문제점이 해결된다는 현상은 어쩌면 비극적인 일입니다. 관치란 경우에 따라 성공하기도 하지만, 과거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실패하거나 성공보다 더 큰 재앙을 잉태할 가능성이 더 높았기 때문입니다.

안심전환대출의 흥행이 남긴 고민거리를 금융당국이 한 번 곱씹어 보면 좋겠습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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