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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폐암 개별 인과관계 소송서 인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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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폐암 개별 인과관계 소송서 인정해야

입력
2015.04.06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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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과 중피종 피해 인정한 것처럼 역학적 증거 개별 환자에 적용해야

새 질병 원인 탐구하는 것이 역학… 철학적 사고가 문제 푸는 데 도움 돼

알렉스 브로드벤트 교수는 6일 서울 마포구 건강보험공단에서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 된다는 역학조사 결과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오랫동안 담배를 피운 암 환자가 담배 때문에 암에 걸렸다는 증거가 된다"고 말했다. 건강보험공단 제공
알렉스 브로드벤트 교수는 6일 서울 마포구 건강보험공단에서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 된다는 역학조사 결과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오랫동안 담배를 피운 암 환자가 담배 때문에 암에 걸렸다는 증거가 된다"고 말했다. 건강보험공단 제공

다음 가정을 보자. “역학조사 결과 담배를 피우는 사람 100명 중 10명이 폐암에 걸린다는 결과가 나왔다. 담배를 피우는 A씨는 폐암에 걸렸다. A씨는 담배 때문에 폐암에 걸린 것일까?”

이 질문이 담배 소송의 핵심이다. 소송을 제기한 측은 흡연으로 인한 암 발생률이 10%로 비흡연자 암 발생률(1%)의 10배나 되기 때문에 A씨 역시 담배로 인해 암이 걸린 것이고, 그러니 담배회사가 배상하라고 한다. 반면 담배 회사들은 “10%는 통계적인 결과일 뿐 A씨의 평소 식습관이나 대기오염, 유전력이 폐암의 원인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10%라는 통계가 개개인의 암 발병의 인과 관계를 입증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법원 역시 역학조사로 드러난 흡연과 암 발병 간 인과관계는 인정하지만, 역학조사 결과를 개인 암 발병의 인과관계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알렉스 브로드벤트(35)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대 철학과 교수는 “역학연구의 증거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개인 발병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과학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브로드벤트 교수는 철학자로는 처음으로 의학의 한 분야인 역학(疫學)을 연구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저서 ‘역학의 철학’이 국내에 번역 출간돼 지난 5일 방한했다.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역학은 질병의 원인을 밝히는 학문이다. 콜레라가 유행하던 1840년 ‘오염된 물 때문에 병이 확산된다’는 사실이 밝혀져 감염을 크게 줄인 것이 역학의 시초다. 이는 콜레라 균의 발견보다도 앞섰다.

6일 서울 마포구 건강보험공단에서 만난 브로드벤트 교수는 법원이 흡연과 폐암 발병간의 역학조사 결과를 개개인에게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국에서도 석면에 노출된 후 악성중피종에 걸린 사람들은 개인별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않아도 모두 그 원인을 석면으로 인정해줬다”며 “담배를 피웠다는 걸 입증했는데도 담배에 대해서는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역시 석면피해구제법이 있어 석면을 다루는 회사에 다녔거나 석면 회사 근처에 살았다는 기록만 있으면 악성중피종(폐와 위장관 등을 둘러싼 막인 ‘중피’에 생기는 암)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따로 증명하지 않아도 배상을 받는다. 그는 또 “법원과 담배회사들은 역학이 통계일 뿐 개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흡연으로 인한 암 발병율이 높다는 걸 알고 금연한 사람은 불합리한 판단을 한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은 최소 30년간 하루 한 갑 이상 담배를 피운 사람 중 폐암(소세포암과 편평세포암) 후두암(편평세포암)에 걸린 3,448명을 추려 담배회사를 상대로 537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19년간 130만명의 질병 정보를 역학 조사한 결과 남성의 경우 흡연자의 후두암 발생위험 정도가 비흡연자의 6.5배에 달했고, 이 같은 담배의 폐해 때문에 건강보험이 지출하는 진료비도 한 해 1조7,000억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배 회사 측은 이러한 역학조사 결과에 대해 ‘통계적인 인과성’일 뿐이라며 3,448명이 모두 담배 때문에 암에 걸렸다는 것을 개별적으로 입증하길 요구했다. 이에 공단은 지난달 15일 개인별 입증 자료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날 건보공단이 주최한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 역학적 증거가 가지는 의미’ 세미나에서 발제를 한 브로드벤트 교수는 한 가지 예를 제시했다. 그는 “A씨가 1,000명당 1명이 걸리는 희귀병에 걸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검사를 했는데 양성으로 나왔다. 이 검사는 오류가 있어 5%는 병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양성으로 잘못 나온다. 그렇다면 A씨가 실제로 이 병에 걸렸을 확률은 얼마일까? 대부분 95%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병에 걸렸을 확률은 2%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95%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병의 유병률을 간과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1,000명 중 1명이 걸리고 5%인 50명은 병에 안 걸렸는데도 양성 반응이 나오는 것이므로, 실제 병에 걸렸을 확률은 51명 중 1명 즉 2%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브로드벤트 교수는 “이 사례에서 1,000명 당 1명 이라는 역학적 증거를 무시하면 명백한 오류를 일으킨다”며 “따라서 역학적 증거는 개별 사례에 대한 사실,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데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철학을 전공한 그는 왜 역학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브로드벤트 교수는 “박사학위를 마치고 케임브리지 PHG(Public Health Genomics) 재단 책임자로부터 역학에 관한 연구를 제안 받았다”며 “역학은 이론 체계가 확실히 갖춰진 것도 아니지만 사례를 통해 질병의 원인을 입증해 나가는 방식이 철학자에게는 흥미로운 과제였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2년간 법학을 전공하기도 했던 그는 “인식론적인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법률적인 관점에서도 역학적 증거는 개별적 인과관계에 충분히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책 ‘역학의 철학’에 대해 “역학적 문제를 철학적 도구와 생각으로 풀어 나가는 입문서”라며 “역학은 그 동안 통계 수학 등과 밀접했지만 철학적 사고가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된다”고 소개했다.

브로드벤트 교수는 8일 서울대 보건대학원 특강, 10일 대한보건협회 특강 등의 일정을 마치고 11일 출국한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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