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찬밥을 먹는다. 전기밥솥에 보온기능이 있지만, 불완전하다. 조금만 묵히면 밥이 누렇게 되거나 물기가 날아가 꾸들꾸들해 진다. 밥이 어중간하게 남으면 밥공기에 퍼놓고, 전기밥솥을 꺼버린다. 그래도 완전한 찬밥은 아니다. 국이나 찌개가 있어야 밥을 먹는 까다로운 식성이어서, 이튿날 아침 뜨거운 국에 말아 먹는다. 요즘처럼 따뜻한 봄날에는 국에 말지 않고도 찬밥으로 끼니를 때울 만하다. 날이 더욱 더워져 찬물에 말거나 냉국을 곁들일 때는 찬밥이 외려 낫다.
▦ 그러고 보니 한식(寒食)의 통설적 유래가 의심스럽다. 어려서부터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하나인 진(晋) 문공(文公)과 충신 개자추(介子推)의 이야기를 들었다. 주군(主君) 의 어려운 시절, 자신의 허벅지 살을 떼어 먹여 생기를 북돋울 정도로 충성을 다하고도, 권좌에 오른 주군으로부터 잊혀진 개자추의 실의가 오죽했을까. 뒤늦게 자신의 무심함을 깨달아 불을 놓아서라도 산에서 그를 불러내려다가 오히려 불태워 죽였으니, 문공의 통한은 또 얼마나 컸을까.
▦ 그러나 그 애달픔이 아무리 컸다 한들, 그것이 한반도로 오롯이 전해져 4대 전통 명절의 하나인 한식(寒食)이 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군신(君臣)의 의리를 강조하려던 역대 왕조의 뜻과 일치했더라도, 민생 깊이 침투하려면 다른 전통 요소와 결합해야 했다. 자연신앙 흐름 속에서 매년 봄 나라가 새 불(新火ㆍ신화)을 만들어 퍼뜨리는 동안 묵은 불(舊火ㆍ구화)의 사용을 금지해 빚어진 불의 공백기라는 설(說)이 한결 그럴 듯하다. 그래야 명절 공통의 제의적 뿌리가 제대로 만져진다.
▦ 24절기의 하나로 농사의 본격적 시작을 알리는 청명(淸明)과 거의 겹친다는 점도 한식의 계절적 성격을 짙게 한다. 농사를 시작하며 조상에게 풍작을 비는 한식이어야, 추수감사제인 추석의 대칭적 의미도 산다. 신록 직전의 메마른 대지, 돌풍이 잦은 불안정한 기압 배치 등이 예로부터 특별한 불조심을 요구했다. 한식인 오늘, 찬밥을 먹어보자. 4ㆍ3사건 좌우 희생자, 4ㆍ16 세월호 참사 희생자, 4ㆍ19 민주영령 등 4월의 넋을 고루 떠올리며.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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