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자녀들의 일자리를 알아봐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는다. 언론사에 근무하니 기업에 끈 닿는 곳이 적지 않게 있는 줄 아는 모양이다. 입사를 원하는 기업을 콕 찍어주기도 하고, 대기업이면 아무 곳이나 좋다는 경우도 있다. 그도 저도 안되면 인턴도 좋다고 한다. 이력서를 보니 하나같이 스펙들이 대단하다. 외국에서 대학을 나왔거나 국내 명문대학원을 나온 경우도 많다. 난감하지만 평소 알고 지내는 기업체 지인들에게 조심스럽게 이력서를 보내고 전화로 부탁도 해본다. 대부분 “알아는 보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란 똑 같은 답변이 돌아온다. 딱 자르지 못하는 거절의 표현임을 모를 리 없다. 당연히 여태 단 한 건도 성사된 게 없다.
경제학자 이정전은 노동과 일의 차이를 설명한다. 그는 저서 시장은 정의로운가에서 “노동이란 순전히 금전을 목적으로 육체와 정신을 사용하는 행위이며, 일은 금전을 초월해서 행위자 스스로 설정한 별도의 목적을 위해서 육체와 정신을 사용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장하준은 저서 경제학 강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은 소득을 얻는 수단 이상이다. 일에 많은 시간을 쏟아 붓기 때문에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우리의 생리적, 심리적 복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또 일은 우리의 자아를 형성하는 데도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이처럼 일자리는 단순히 돈벌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은 일자리를 통해 가정도 꾸리고 미래의 계획도 세운다. 결혼하고 출산하고 아파트 평수도 키우고 노후도 대비하는 것이다. 일자리는 삶의 터전이자 자아실현을 위한 공간이다. 일자리가 없는 삶은 어둠 그 자체다. 그래서 영혼을 팔아서라도 일자리를 얻고 싶다는 청년들의 절규에 정부는 마땅히 응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 후보들이 일자리 창출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우지만 제대로 공약을 이행했던 경우는 눈 씻고 봐도 찾기 어렵다. ‘일자리가 곧 복지’라고 일자리가 넉넉하면 국가경제의 상당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라.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라는 얘기를 했다가 청년단체 회원들로부터“청년들을 중동으로 보내라니. 니가 가라, 중동”이라는 야유를 들었다. 아픈 청춘들에게 대단한 결례다.
청년실업 문제가 본격 대두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다. 1882년~1997년까지만 해도 청년실업률은 연평균 5.6%에 불과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과 1999년에는 갑자기 10%를 상회했다가 이후 7%를 유지해 왔으나 최근 다시 10%를 넘었다. 올해 2월의 경우 취업포기자를 감안한 체감청년실업률은 무려 12.5%에 이른다. 그나마 고용의 질도 낮다. 임시직과 비정규직 비중이 대폭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취업자와 실업자는 물론,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취업자간 소득격차가 크게 벌어져 위화감이 조성된다.
이태정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저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에서 청년실업률이 떨어지지 않는 몇 가지 요인을 지적했다. 우선 대학졸업자 비율이 크게 늘면서 일자리 미스매치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기업들이 인건비절감을 위해 대졸자를 미리 선발하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상시 고용하는 체제로 바꾼데다, 경력자를 우대하는 방식도 신규 대졸자들의 취업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청년실업이 국가 미래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데도 여전히 마땅한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정부 에너지를 우선적으로 이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 급한 대로 당장 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부터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고액연봉자의 임금을 동결해 청년층 고용 등에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정부도 노동계에 정규직 임금동결이나 임금피크제 등을 통해 청년 일자리를 만들자는 요구를 하고 있다. 미봉책이기는 하나 실마리를 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이 문제부터 노사정위원회가 조속히 결론을 내야 하는 이유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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