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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목표 대신 가고 싶은 방향으로 '한 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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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목표 대신 가고 싶은 방향으로 '한 발짝'

입력
2015.04.0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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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고단한 세상살이 견디는 지혜 나눠

힐링ㆍ증후군 남발해 병 만드는 세상

상처받을까 걱정 말고 즐기며 극복을

김혜남 의사가 신간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를 소개하고 있다.
김혜남 의사가 신간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를 소개하고 있다.

“삶은 우리가 보고자 하는 만큼만 보여준다. 멋지고 활기차게 살아야 한다. 인생을 축제처럼!”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로 잘 알려진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56)이 7년 만에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갤리온 발행)라는 새 책을 냈다. 김씨는 12년간 5권의 책을 내 12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간 강의도 하고 병원을 운영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상담해주었지만 그는 2001년부터 15년째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서울 역삼동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마당에는 유기견 출신 선(비글)과 샤인(래브라도 리트리버)이 꼬리를 흔들며 격하게 반겨주었다. 그는 작업실인 지하로 안내했는데 여러 개의 운동기구와 종류별로 정리된 원두커피 병들이 눈에 띄었다. 오른쪽 다리와 팔을 움직이는 데 불편해 보였지만 손수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주고 휴대폰으로 강아지 사진을 찾아 보여주느라 바빴다.

“이 운동기구들 전부 제가 하는 거에요. 6개월 전부터 운동을 시작했는데 리듬을 찾는데 확실히 도움이 되더라고요.”

파킨슨병은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생산하는 뇌 조직 손상으로 손발이 떨리고 근육이 뻣뻣해지고 몸이 굳고 행동이 느려지고 말이 잘 나오지 않는 신경퇴행성 질환이다. 몸 상태가 나빠져 지난해 1월부터는 병원을 접고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하지만 약을 먹어야 2, 3시간 몸을 움직일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한 걸음도 떼기 어려운 ‘스위치 오프’상태가 된다. 때문에 친구들은 그를 보고 투 아워 우먼(2 hour woman)이라고도 부른다.

-파킨슨병 공개가 처음인 것 같다.

“선입견 때문에 진료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았다. 몸이 좋지 않아도 열심히 병원에 나갔는데 지난해 1월 초부터 진료를 보면 몸을 질질 끌고 퇴근했을 정도였다. 한 달 정도 쉬면 나을 줄 알았는데 몸이 나빠져 제주도로 내려갔다. ‘오프’상태가 올까봐 약 먹을 시간을 조금씩 당겼다. 약 기운이 있는 2시간에 밥과 반찬을 해놓고 운동도 했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후 몸이 좋아져서 지금은 스스로 사람 꼴 됐다고 한다.”

-부부가 의사인데 파킨슨병을 일찍 몰랐나.

“치료가 제일 어렵고, 끝까지 병원에 가지 않는 게 의사다. 자기 몸을 다른 의사에게 맡기는 것도 싫어한다. 몸이 이상하다고 느꼈던 건 2, 3년 전이다. 처음엔 갱년기 증상이라고만 생각했다. 질환을 알고 난 뒤 처음에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미래가 불확실할 뿐 나는 그대로라고 생각했고 책을 쓰기 시작했다.”

-책에서 ‘해야 한다’보다 ‘하고 싶다’는 말을 권했다.

“사람들은 너무 재는 게 많다. 걱정이 많은 거다. 하지만 한치 앞을 모르니까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먼저 한 발짝 떼라는 것이다. 제주도에서 화장실을 가려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더라. 이때 화장실이 아니라 발을 보고 한 걸음 떼었더니 되더라. 갈 방법이 없더라도 한 발짝이라도 내디뎌야 한다는 걸 느꼈다. 그러면 천천히라도 가게 된다.”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어른이 되면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지만 그때 엄청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거다. 과거를 생각하는 것보다 오늘을 더 즐겁게 만들고 에너지를 쏟는 게 낫다.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갈까. 호기심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삶은 보고자 하는 만큼만 보여준다. 몸은 느려졌지만 오히려 주변의 작은 아름다움에 감탄할 수 있게 됐다.”

-직장 선후배를 굳이 좋아하려 하지 말라고도 했다.

“직장동료라고 하지 직장친구라고는 하지 않는다. 낮에 그렇게 보고도 또 저녁때 회식을 하며 형님 동생 한다. 조직체계를 견디지 못하고 모두 가족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식당에 가도 이모라고 하지 않는가. 관계의 한계를 항상 알아야 한다.”

-요새 청년들은 취직도 어렵고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보다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 안에서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 다음세대는 갈 곳을 몰라 방황하면서 자아실현을 못하고 있다는 패배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현재에 만족하라는 조언들만 하는 것 아닌가.

“세상은 불평등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오더니 부잣집 자녀들은 다 신경정신과 다니고 약 먹어야 잠을 자고 하는데 평범한 집 친구들은 동대문에서 사업하며 열심히 재미있게 산다고 하더라. 꿈이 있으니까 열심히 사는 거다. 어떤 게 더 행복한 삶인지는 모르는 거다. 삶의 목표 의미를 갖고 자신이 주인공이 되야 한다.”

-‘힐링’이 유행이다.

“힐링이라는 말, 증후군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모든걸 병으로 만들지 말라는 거다. 명절증후군 월요증후군 이런 건 당연한 거고 겪고 넘어가고 극복하면 되는 거지 치료가 필요한 게 아니다. 사소한 일까지 상처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 상처를 주고 받을 수 있지만 이를 어떻게 수습하느냐가 중요한 거다. 상처받을 까 걱정돼 마음의 문을 닫지 말고 오히려 즐기며 환대하라. 연애하는 마음으로 기대와 설렘을 가지면 오늘이 신나고 재미있는 하루가 될 것이다.”

글·사진=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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