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대 도덕과 신시대 질서 충돌
메이지시대 개인 내면의 격랑 탐구
“메이지는, 그리고 메이지인은 알면 알수록 심오하다. 시대를 지나도 변함이 없는 일본인 정신의 상당 부분, 문화적 근대성과 근대적 병리의 근원은 분명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우리들의 지적인 흥미는 더욱 솟구쳤다.”
작가 세키가와 나쓰오는 ‘도련님의 시대’ 1권 마지막에 이 만화를 쓰게 된 계기에 대해 자세히 썼다. 세키가와는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1867~1916)의 초기 걸작 ‘도련님’을 놓고 나쓰메가 어떻게 이 소설을 쓰게 됐는지 허구의 이야기를 엮으며 메이지 시대(1868~1912)의 실체를 파고든다. ‘도련님의 시대’는 세키가와와 함께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가 1986년 12월부터 만화잡지에 연재해 12년 만인 1998년 완성했다. 어른들을 위한 만화를 주로 그리는 다니구치는 ‘신들의 봉우리’ ‘고독한 미식가’ ‘선생님의 가방’ ‘시튼’ ‘열네 살’ ‘K’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나쓰메는 영국 유학을 다녀와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면서도 서구를 싫어했던 신경증 환자였다. 도쿄 출신의 막내 도련님이 시골 중학교 교사로 부임하면서 겪는 좌충우돌을 그린 성장소설 ‘도련님’은 근대화라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문제 의식과 불안감을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나쓰메와 ‘도련님’은 다니구치와 세키가와가 메이지 시대와 메이지인을 투영할 수 있는 완벽한 소재였다. 메이지 시대는 일본 근대사의 전환기였다. 서구화의 충동이 꿈틀거리는 한편 서구에 맞서 일본을 지키려는 민족주의가 팽창했다. 국민국가 형성도 분주히 이뤄졌다. 청년들은 구시대적 도덕과 신시대적 사상의 충돌 속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며 세상과 싸우거나 자기만의 세계에 스스로를 가두기도 했다. 두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거품경제의 팽창과 파열 속에서 고뇌하는 현대 일본인의 정신적 뿌리를 ‘도련님’의 시대에서 찾는다.
‘도련님의 시대’에는 나쓰메를 비롯해 후타바테이 시메이, 모리 오가이, 이시카와 다쿠보쿠, 고토쿠 슈스이 등 메이지 시대 문인과 사상가가 다수 등장한다. 급속한 서구화와 방어적 민족주의, 제국주의적 확대가 충돌하던 시기에 세상과 자아에 대한 고민을 하며 자기만의 길을 걷고자 한 ‘도련님’들이다. 나쓰메와 함께 일본 근대 소설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모리를 통해 가문과 개인, 국가와 사랑, 일본과 서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고뇌를 보여주고(2권), 국민 시인 이시카와의 향락적인 삶에서 청년들의 방황을 그린다(3권). 4권은 천황 암살을 모의했다는 죄명으로 26명이 사형당하거나 수감됐던 ‘대역사건’을 묘사하며 역사의 격랑에 휘말린 삶을 살핀다.
5권에서 다시 돌아온 주인공 나쓰메는 지병으로 30분간 사경을 헤맨 경험 끝에 1~4권에 등장한 인물들을 만나며 “영광과 암흑이 함께하던 위대한 시대, 즉 ‘도련님’의 시대”와 작별을 고한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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