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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독재정권 민족성 강조, 日영향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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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독재정권 민족성 강조, 日영향 컸다"

입력
2015.04.0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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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서 교육받은 다수 종족 청년들, 日 전쟁 패배 후 민족지도자로 나서

통치자의 아내·딸, 즉 '공주'들이 권력 쥔 것도 아시아의 예외적 특징

지금도 인종·민족주의 이름으로 이주자들에게 탄압 가해

민족주의의 본질을 다룬 ‘상상의 공동체’의 저자 베네딕트 앤더슨 미국 코넬대 명예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2005년 첫 방한 이후 10년 만이다. 앤더슨 교수는 3일 광주 동구 아시아문화전당 문화정보원에서 열린 ‘2015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비전포럼’에서 “아시아의 민족주의는 유럽, 아프리카 등과는 매우 다른 독특한 양상으로 발달해왔다”며 독재와 족벌주의 등으로 인해 “젊은 에너지와 민족을 위한 봉사가 심각한 난관에 봉착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후기 민족주의, 국가, 시민권, 이주에 대한 고찰’을 주제로 기조연설에 나선 앤더슨 교수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대영제국과 같은) 거대한 패배자들(the Great losers) 가운데 발현한 새로운 민족주의와 국제연맹의 탄생으로 제국주의 군주정이 종결됐지만 하지만 아시아에서는 그림이 전혀 달랐다”고 운을 뗐다. 그는 “제국주의 해양강국들이 암묵적 동의 하에 아시아의 약소국을 나눠 지배했고, 대만과 한국을 지배한 일본만이 유일한 예외였다”고 분석했다. 또 “일본은 타이완을 분별있게 지배했다면 조선은 야만적으로 지배했다”고 덧붙였다.

아시아에서 독재정권이 민족성을 강조하게 된 독특한 상황은 일본의 영향이 컸다고 앤더슨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인도의 간디, 베트남의 호치민, 중국의 마오쩌둥 등 기존 아시아 민족 지도자들은 대부분 젊고 식민지 관료제에 연관되지 않은 이들이었으나, 전쟁에 뛰어든 일본이 이들 나라에서 군대를 만들기 시작하며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일본으로부터 교육받은 다수종족 청년들이 일본의 패배 이후에도 각국에서 자신의 힘을 유지하며 이른바 국가를 이끄는 민족지도자로 나섰다는 것이다. 각국 총리에 오른 미얀마의 아웅산 장군, 인도네시아 수디르만 장군 등을 대표적 예로 꼽았다.

“젊은 에너지와 민족을 위한 봉사는 심각한 난관에 봉착했다. 정치가들은 수 십 년에 걸쳐 할 수 있는 한 계속 정치를 하려 했고, 친인척들을 위한 족벌주의에 빠졌다. ‘우리가 따냈으니’ 보상이 뒤따른다는 식의 과두적 부패가 가시화됐다. 국가는 미디어, 경찰력, 스파이활동, 애국적 쇼와 영화 등 숱한 도구까지 손에 넣고, 터무니 없는 거짓과 영웅신화들로 가득 찬 역사를 어린 학생들의 머리에 집어넣었다.”

옛 정치인의 아내, 딸 즉 ‘공주’들이 권력을 쥔 것도 아시아의 예외적 특징이라고 그는 말했다. “네루의 딸 인디라 간디, 스리랑카 총리의 미망인이었던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처형된 파키스탄 전 총리의 딸 등이 모두 총리가 됐다. 폭력적 종말을 맞은 남성통치자의 아내나 딸이, 즉 자수성가한 시민이라기보다 ‘공주’들이 집권자가 되는 이런 아시아적 패턴은 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 총리나 대통령직은 근대적이고 민족주의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거의 조직된 정당, 대중선전, 남편이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선거에서 이겼다.”

앤더슨 교수는 또 이런 아시아에서 여전히 인종주의 혹은 민족주의 이름으로 무심하게 벌어지는 타인에 대한 탄압에 주목했다. 그는 “아시아 내부에는 가장 근대적이고 슬픈 이주자들이 있다”며 “대부분 가난과 교육부족, 부실한 기술,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몇푼이라도 돈을 부치려는 희망 때문에 이주해온 이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국이나 조국이라는 관념은 국제연맹이 조직(1920년)되기 얼마 전에야 창조된 것이지만 평등한 시민이라는 개념은 프랑스 혁명(1789~1794년) 중 창조됐다”며 민족과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탄압의 미련함을 지적했다.

이어 “미국식 산업 자본주의는 청소부, 마부, 요리사, 정원사 등을 성능 좋은 전자제품으로 대체했지만 동남아 중산층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다”며 싱가포르, 홍콩 등에서 가정부로 일하며 탄압받는 인도네시아 무슬림 이민자들을 언급했다.

“여러분도 이들 도시에서 유복한 아내들이 가정부를 때린다거나, 여권을 압수한다거나, 남편을 유혹한다면서 모함을 한다거나 하는 잔악한 짓을 하는 것에 대해 알 것이다. 우리 모두 이런 상황을 지옥이라고 느끼지 않는가.”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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