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보세”의 호소력은 압도적이다. 초동급부의 소박한 욕구를 흔든 이 구호는 국토 곳곳에 스며 1970년대를 지탱했다.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경제는 참 잘했는데 독재가 문제”라는 식의 박정희 리더십 평가의 한 축을 떠받든다. 그때 그 시절이 독재나 파시즘의 틀 안에 머무르지 않고, 누구에게는 향수까지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1970, 박정희 모더니즘’은 당대를 구성한 이들의 삶의 개별 장면들을 조명하며 박정희 리더십의 맨 얼굴에 접근하는 책이다. 하나같이 “박정희 시대에 태어나 그 따님의 시대를 살아가는 팔자”인 5명의 인문학자들이 경향신문에 연재한 글을 다듬어 엮었다.
“그때서야 처음 국가와 재벌의 위력을 실감하고, 처음 공장에서 일하고 도시에 살며 자본주의자가 돼 갔던” 당대인이 겪어 낸 속도전은 흥미와 의분을 동시에 일으킨다. 국가성장에 혹사당할지라도 저녁이면 텔레비전과 라디오 앞에 모여들고, 선데이서울에 도취돼 물욕과 성욕을 폭발시킨 시대. 개발과 투기 광풍 속에 강남이 개발되고 동시에 온 국민이 문화재 발굴 장면에 흥을 돋운 시대. 영부인이 고운 자태로 ‘국모’역을 자임하는 동안 전태일이 산화하고 여성노동자들이 똥물을 뒤집어 써야 했던 시대.
각 조각을 모아 저자들이 완성한 그림은 “국가자본주의 명령 하에 재편된 시민들이 겪어낸 총체적 억압과 불법적 통치, 인권말살의 기호”이며 이른바 유신 모더니즘이다. 이들은 세 가지 관점에서 유신 모더니즘의 과장된 신화를 조목조목 깨뜨린다. 첫째, 당대 추진된 근대화와 산업화는 단지 한국이라는 한 나라의 수준에서 성취된 것이 아닌 세계 분업체제로의 편입이자 서구화였다는 점. 둘째, 재앙에 가까웠던 정권 초기나 말기 경제정책에 비춰볼 때 “그 분이 그래도 나라 이만큼 키웠다”는 ‘노예논리’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 셋째, 박정희 체제를 지탱한 것도 끝장낸 것도 모두 대중이었다는 점이다. 비록 유신의 마지막 장면은 김재규의 탄환이 장식했으나 부마항쟁 등의 폭발력이 한몫 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피눈물 나는 희생을 감내하면서도 산업화ㆍ도시화가 자기에게나 공동체에 이익이 된다고 굳게 믿은 민초들”이 유신 모더니즘을 받쳐냈고, “부끄러움과 분노라는 심성의 연대”가 이를 끝냈다고 봤다.
“허름한 작업복 차림의 노동자는 물론, 다방 아가씨와 호스티스까지 거리로 나왔을 때 사람들은 ‘세상은 이미 달라졌다’ ‘유신도 박정희도 이젠 갔다’고 생각했다. 도시 하층민들이 다시 거리를 메운 것은 부마항쟁 때에만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4.19혁명과 1980년 광주도 이와 같았다.”(387쪽)
그에 비하면 여전히 피폐하면서도 개선을 부르짖을 기력마저 잃고 실신(失神)한 2015년 우리네 모습은 어떤가. 그러고 보면 ‘후기 유신 모더니즘’의 이름은 ‘실신 모더니즘’쯤 되겠다. 우리는 과연 잘 살아봤나. 아니라면 비극을 끝장 낼 의지라도 있나. 분노하기는커녕 상냥한 표정으로 먹방(먹는방송)에 사로잡힌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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