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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유시민이 옳았다

입력
2015.04.0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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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1월 유시민 복지부 장관과 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이 국무회의를 앞두고 복도에서 언쟁을 벌였다. “공무원연금을 올해 개혁하지 않으면 재정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유 장관 말에 박 장관은 “대통령의 뜻이 아니다”며 맞섰다. 임기 마지막 해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개혁안 동시처리가 부담스러웠던 노 대통령은 국민연금만 처리하는 걸로 물러섰다. 그때 어렵게 국회를 통과한 국민연금 개혁안은 1988년 연금 도입 때에 비해 소득대체율이 30%나 낮은 파격적인 안이었다. 유 장관이 입안한 개혁안은 탄탄한 국민연금을 만드는 토대가 됐다.

▦당시 복지부 장관이 소관업무가 아닌 공무원연금에 목을 매자 공무원들은 연일“유시민 물러나라”고 성토했다. 시민단체들은 ‘최악의 복지부장관상’을 주기도 했다. 유 장관은 공무원노조에게“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다음 정권, 다 다음 정권에선 더 힘든 조건으로 연금수술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으나 귀담아 듣지 않았다. 장관에서 물러나 국회로 돌아온 그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정부와 새누리당이 내놓은 방안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

▦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워 시행 중인 기초연금 아이디어도 유시민 작품이다. “효도를 자식들한테 맡기지 말고 국가도 좀 어르신들한테 효도하자”는 취지로 효도연금법을 구상하고 있다가 장관에 취임하자마자 추진했다. 노 대통령이 명칭을 기초노령연금으로 수정했고, 그게 현 정부 들어 기초연금으로 확대됐다.

▦ 정치인 유시민은 ‘싸가지 없다’는 한 마디로 폄하되지만 행정가로서의 유시민은 유능했다. 복지에 대한 철학과 비전을 갖고 있었고 업무에 정통했다.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소신껏 밀어붙였고 책임질 줄 알았다. 복지부 공무원들 사이에선 역대 최고의 장관으로 꼽힌다. 박근혜 정부에는 눈을 씻고 봐도 그 같은 장관을 찾아볼 수 없다.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내거나 “이 정책은 꼭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장관이 없다. “장관이 되면 오로지 국리민복에 충실한 행정가가 되겠습니다.” 유시민과 같은 약속을 하는 장관조차 없으니 그 이상의 기대는 무망하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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