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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규직 임금 동결 협의를 위한 조건

입력
2015.04.0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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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열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포럼에서 김영배 상임부회장이 “연봉 6,000만원 이상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을 향후 5년간 동결하고, 그 재원을 협력업체 근로자 처우 개선과 청년층 고용에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발언이 보도된 후 나온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 기조를 띠고 있다. 김 부회장의 제안이 전체 근로자의 처우 개선보다는 대기업 정규직들의 몫을 빼내 협력업체와 신규 인력, 비정규직에게 돌려주는 방안에 불과하고, 근로자들 사이의 임금 격차가 대ㆍ중소기업간 불공정 거래에 기인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을 감안하더라도 임금 동결 제안이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발언 취지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아래와 같은 점을 보완한다면, 위 제안은 노사정 합의를 통해 실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정규직 임금 동결의 목표를 중소기업 및 비정규 근로자의 임금 소득을 높이는 것으로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 각 산업별로 대기업 정규직과 그 밖의 근로자들 사이의 임금 격차를 몇 %까지 줄일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김 부회장은 정년 연장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기업 부담을 해소한다는 목표를 제시했으나, 이것은 임금 동결 외의 수단으로 해결할 과제이다.

한국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기업 규모와 정규직 여부에 따라 근로자들 사이에 극심한 임금 격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자동차 산업의 경우, 2009년 기준으로 1차 협력업체의 임금은 완성차 업체의 77.1% 수준에 불과하고, 2차 협력업체는 65.1% 수준에 그쳤다. 이러한 임금 격차를 해소한다는 목표가 제시된다면 임금 동결 제안에 대한 노동계의 부정적 시각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협의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산업별로 대기업, 협력업체, 정규직과 비정규직, 정부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전체 산업에서 구성하는 것이 어렵다면, 가능한 산업별로 구성할 수도 있다. 그 협의체에서는 정규직 근로자들의 임금 동결분이 협력업체 근로자 또는 비정규직 등의 임금 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이 논의되어야 한다. 임금 동결분이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에 직접 기여하는 방안이 있어야만 대기업 정규직의 희생을 요청할 수 있는 정당성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셋째, 임금 동결이라는 근로자들의 희생에 상응하는 기업의 희생이 요구된다. 대기업과 협력업체 사이에 존재하는 교섭력의 불균형은 근로자들 사이에 임금 격차가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이다. 대기업이 강한 교섭력에 기초하여 협력업체의 임금 수준을 관리ㆍ통제하는 현실에서 협력업체의 노력만으로는 소속 근로자들의 임금을 높이는 건 한계가 있다. 정규직의 임금 동결분과 함께 대기업의 이윤을 협력업체 근로자와 비정규직으로 이전할 때 임금 동결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세 가지는 임금 동결 제안이 실현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만약 이 제안이 성사되어 산업 내에서 대기업과 협력업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임금 격차를 해소할 수 된다면, 5년 후 한국 노동시장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의 구직난과 청년 실업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특히 같은 산업에서 같은 종류의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의 임금 격차가 해소될 경우,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업 내 직무급 시스템도 성공적으로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산업 내 직무급 체계가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개별 기업에서 직무급 체제를 만들겠다는 것은 구두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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