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시절, 사격 솜씨가 엉망이었다. 탄환이 타깃을 무시해버릴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나, 늘 한끝이 모자라 몸으로 때워야 할 때(기고 뛰고 구르고 박는 얼차려를 말한다)가 많았다. 가령 이런 식. 총 20발 중에 18발을 맞춰야 하는 조건이라면 꼭 16발이나 17발에 그쳐 불합격자가 되었다. 통제관이 조금 아량을 베풀어 16발로 기준을 낮춰주면 어김없이 14발 정도. 그래서 계속 기고 뛰고 구르고 박았다. 적과 마주칠 일이 생긴다면 백병전의 영웅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
대대 차원의 사격 심사라도 있을라치면, 그 전날부터 내심 이를 갈았다. 얼차려가 무서워서라기보다, 어떤 한계치 앞에서 지나치게 긴장해버리는 내 뻣뻣한 정신력이 저주스러워서였다. 그럼에도 사격장에선 다시 기고 뛰고 구르고 박기의 연속. 그 이후, 고참이 되어서도 사격장 가는 길엔 늘 탈영 충동이 일었다. 소위, ‘기준’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임의적인 폭력성 같은 것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진짜로 실행하기도 했다. 결론은 물론 개똥만도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쓸데없는 일에 골몰해 있을 때엔 주요 사안들에 대한 유연한 방기가 가능해졌다. 그렇게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다시 찾은 어느 쌀쌀한 사격장. 사로에 올라 게슴츠레 눈을 뜨고 총을 겨누었다. 탕탕탕. 20발 만발이었다. 우습고 기특했다. 병장 4호봉 겨울이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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