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ㆍ소송ㆍ이행 모니터링 지원 기구
한부모 가정 83% 생계 어려워
출범 첫날 상담전화 3400건 쇄도
1973년 명문여대 법대 졸업 후 사법시험 합격, 98명의 사법연수원 연수생(10기) 중 유일한 여성, 1980년 7번째 여성 판사로 임용.
지난달 25일 출범한 여성가족부 산하 양육비이행관리원의 이선희(66) 초대원장의 약력이다. 모두가 가난했던 1970년대에, 그것도 여성이 이룬 이 눈부신 성취를 보면 누구나 “유복한 집안의 귀한 딸이었겠지”라고 짐작할 것이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은 주로 전 배우자로부터 자녀의 양육비를 받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부모 가정이 양육비를 받도록 돕는 곳인데, 이 원장이 이들의 아픔을 알기나 할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1일 서울 서초구 양육비이행관리원에서 만난 이 원장은 “어린 시절 일주일 동안 밥 한 끼 못 먹고 굶은 적도 있다”고 했다. 서울 달동네에서 살았던 이 원장은 집이 너무 가난해 열한 살 때까진 학교 문턱에도 못 가봤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미인가 학교에 다니다 검정고시를 쳐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가난하게 사는 게 싫었고 할 수 있는 게 공부밖에 없었다”는 이 원장은 1978년 사법고시(20회)에 합격했고 당시 단 2명의 여성 합격자가 바로 이 원장과 김영란 전 대법관이다. 이 원장은 2001년까지 22년간 판사, 이후 4년간 사법연수원 교수로 지냈다.
지난 10년 간 변호사와 북한이탈주민 인권보호관으로 활동했던 이 원장이 양육비관리이행원장 공모에 지원한 건 한부모 가정이 겪는 가난함을, 양육비 지급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판사 시절, 이혼 후 아이를 맡지 않는 아버지에게 ‘양육비는 꼭 지급하라’고 살살 달래며 당부했어요. 하지만 몇 달 후 어머니가 법원 앞에서 내가 퇴근하길 기다렸다가 ‘전 남편이 양육비를 안 주니 판사님이 주라고 얘기 좀 해줘요’라고 매달렸죠.”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판사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판사는 양육비를 주라고 판결만 내릴 뿐 실제로 주는 건 온전히 당사자들 몫이다. 외국은 정부가 직접 나서서 양육비를 받아준다. 그러다 보니 한부모 가정 83%가 양육비를 못 받고 있으며, 월 평균 소득이 172만원(2012년 기준)으로 전체가구 평균 소득(353만원)의 절반이 안 될 정도로 생계가 어렵다.
양육비 상담부터 합의, 소송, 채권추심, 이행 모니터링까지 전 과정을 무료로 지원하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생긴 것도 이런 절박함 때문이다.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 ‘구조조정’에 칼을 빼든 가운데 산하 기구가 새로 생기는 건 이례적이다.
양육비는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는 데 필수다. 이 원장은 “소년범 사건을 보면 이혼 후 어머니가 하루 종일 생계에 매달리느라 자녀를 돌보지 못해 삐뚤어진 경우가 많다”며 “아이들이 사회에 대한 적대감을 키우며 가난을 대물림 받는 걸 보며 정말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적은 돈이라도 양육비가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것이 한부모 가정의 경제와 아이의 정서에 큰 도움이 된다고 이 원장은 강조했다.
하지만 양육비이행관리원이 갈 길은 멀다. 출범 첫날 3,400여건의 상담전화가 걸려왔다. 8명의 상담사뿐 아니라 50여 직원 모두 매달렸는데도 실제 상담을 해 준 건 10% 정도인 380여건 뿐이었다. 이 원장은 “최소 30명의 상담사가 3교대로 근무하며 상담 전화를 다 소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부모 골라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이혼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환경 때문에 건강한 어른이 되는 데 지장이 있으면 안 됩니다. 국민 모두가 아이를 키우는 데 마음을 모아주세요.” 인터뷰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 생각만 한 이 원장의 간곡한 당부다.
글ㆍ사진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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