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레인지·세탁기… 최신시설 갖춰
독서실 등으로 신고해 규정 피해가
외국인들은 인터넷 사진 보고 예약
대부분 불법시설 사실 모르고 이용
사고 당해도 법의 보호 받기 어려워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복판에 위치한 A오피스텔. 서울경찰청 소속 관광경찰과 마포구청 직원 5명이 별안간 16층 객실에 들이닥쳤다. 이 곳은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한 쪽에 가스레인지와 세탁기까지 구비돼 있어 누가 봐도 최신식 숙박시설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오피스텔 12~16층에 있는 객실 20개가 이런 식으로 꾸며져 건물은 들고 나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하지만 구청 직원이 업주 B씨에게 내민 집합건축물대장을 보면 황당하게도 해당 층은 숙박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독서실로 신고가 돼 있었다. B씨는 “우리는 일회용품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숙박시설이 아니다”고 둘러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찰, 구청은 이날 합동으로 서울 도심에서 불법 숙박시설을 운영하는 레지던스와 게스트하우스를 불시 점검했다. 한류 여파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허가를 받지 않거나 용도를 임의로 변경해 숙박업에 나서는 시설이 폭증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문화관광연구원이 지난 2월 조사한 관광호텔수급분석 결과에 따르면 현재 서울을 방문하는 관광객 수와 비교해 부족한 관광호텔 객실 수는 1만3,000실 정도. 문체부는 이 가운데 일반 호텔, 합법적인 레지던스 등 일반 숙박업소가 수용할 수 있는 객실은 4,700실에 불과해 나머지는 전부 불법 레지던스나 게스트하우스에서 관광객을 충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숙소 부족으로 찜질방에 묵기도 하는 관광객 입장에선 불법 업소라도 반가울 수밖에 없지만 문제는 이런 시설들이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소방법규에 따르면 숙박시설은 일반 건물보다 훨씬 엄격한 소방 기준을 따라야 한다. 객실마다 최소 두 개 이상의 간이 완강기를 구비해야 하고, 카펫이나 커튼에 대한 방염 처리도 의무화돼 있다. 그러나 이날 단속된 A오피스텔은 독서실로 신고돼 있는 탓에 해당 규정을 교묘히 피해갔다. 김휴영 서울경찰청 관광경찰 순찰팀장은 “시설 자체가 불법인 탓에 관광객들이 사고를 당해도 제대로 된 법의 보호를 받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정작 이곳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불법 시설인지 모르고 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보통 인터넷에서 예약을 해 객실 사진만 보고 당연히 일반 숙박업소인 줄 알고 찾는다는 설명이다. A오피스텔로 들어서던 대만 여대생 관광객 5명도 “온라인 검색을 통해 예약해 불법인 줄 전혀 몰랐다”며 “가격이 싸고 서울 중심부에 위치해 찾게 됐다”고 말했다. 불법 숙박업소 예약 등은 모두 온라인으로 은밀히 이뤄져 단속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불법 숙박업이 성행하는 것은 약한 처벌 규정 때문이다. 공중위생관리법에 따르면 숙박시설을 미신고하다 걸리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는데 실제 법원 판결은 200만원 정도 벌금을 내는 선에 그친다. 또 6개월까지는 여러 차례 단속을 당해도 횟수가 한 건으로 처리돼 업주들이 ‘배째라’ 식으로 영업을 지속하는 경우가 많다. 김철민 문체부 관광정책관은 “단속 유예기간을 1,2개월 수준으로 단축하고 처벌 강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관계 부처와 협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민정기자 fac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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