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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김영란법, 김영란만 모른다?

입력
2015.04.01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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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단절 위해 감당해야 할 과제 불구

‘반대하면 부정부패자’ 단순도식 곤란

경제 타격 등 부작용 겸허히 성찰해야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환자가 되어 병원에 가면 누구나 고분고분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땐 폭발하고 말았다. 군대 시절 축구 하다 다친 왼쪽 무릎관절이 문제였다. 가끔 무리를 하면 붓고 아파 정형외과 의사에게 운동으로 무릎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을지를 조심스레 물었던 것이다.

“안돼요. 연골은 재생이 안 돼요. 무조건 뛰지 말고, 덜 걷고, 덜 움직여야 합니다. 아시겠죠?” 환자의 무지한 기대가 가소롭다는 듯 의사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적절한 운동으로 무릎 주변 근육을 강화하는 건 어떨까요?”했다. “어허! 그게 무릎 망치는 거라니까 그러시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무조건 뛰지 말고, 덜 걷고, 덜 움직이세요. 알겠습니까?”라는 가차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아니, 선생님은 무릎만 신경 쓰니 무조건 덜 움직이라지만, 사는 게 어디 그렇습니까. 뼈가 닳아도 써야 하고 무리가 돼도 뛸 수밖에 없는 거지, 그렇게 꼼짝 말라는 말씀이 어딨어요?”

말하자면 불가피한 삶의 현실을 깨끗이 제거한 채, 오직 무릎 상태 하나에 국한해 나름의 처방을 내리고 그걸 고집하는 의사가 야속하고 답답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김영란법’을 애초에 발의한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에게서도 새삼 비슷한 답답증을 느끼게 됐다.

김 전 위원장은 최근 서강대 특강에서 “왜 이렇게 (김영란법을) 두려워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영란법으로 알려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은 부정한 청탁을 고리로 돈 받아 먹고, 향응을 즐기는 탐관오리나 부패 정치인 등을 겨냥한 것인 만큼, 그걸 두려워하는 자들이야말로 부정부패의 당사자들 아니냐는 야유인 셈이었다. 그는 김영란법이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약간의 부패가 국가경제에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시각이 과연 옳은 건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형외과 의사의 처방처럼 김영란법이 의심할 여지 없이 옳다고 해도, 현실은 늘 옳고 그름이라는 단순성을 넘어선 곳에 있다. 김영란법을 누가, 왜 두려워하는지의 문제만 해도 그렇다. 부정청탁을 고리로 돈 받아 먹고, 향응 즐겨왔던 자들은 결코 김영란법이 두렵지 않다. 법망을 피해 갈 길이 얼마든지 있는 만큼, 그들로서는 약간 불편하고 아쉬울 뿐이다. 정작 두려운 사람들은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순간부터 폐업을 고심할지도 모를 식당, 술집, 유흥장 등을 운영하는 수많은 자영업자들이고, 거기서 근근이 생계를 꾸리는 더 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김 전 위원장은 그런 상황을 ‘약간의 부패에 따른 경제 윤활유’라는 정도로 표현했지만, 현실적으론 줄잡아 수천 개 자영 사업장의 존폐와 수만 명의 일자리, 생계가 달린 문제가 된다.

비단 김영란법 뿐만 아니다. 현실을 폭 넓게 배려하지 못한 법률ㆍ행정적 금지가 경제를 위축시키고 민생에 타격을 가한 사례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 만도 한 둘이 아니다. 세월호사건 후 교육부는 수학여행과 수련활동 등을 사실상 억제해왔다. 엄연히 교육과정에 있는 활동인 만큼 안전성을 보강해 실시할 생각은 않고, 슬쩍 귀찮은 일을 포기해버린 셈이다. 그 결과 연간 줄잡아 2,000억원 이상의 지역 관광소비가 위축됐다. 현금 2,000억원은 은행이 지역 경제에 수조 원의 유동성을 창출할 만한 돈이다. 식당 커피숍 등에 대한 일괄적 금연조치 역시 애먼 식당이나 커피숍에 존폐를 가를 타격을 입힌 부수적 피해가 두드러졌다.

먹고 살기 힘들어지니 김영란법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김영란법은 고통스럽지만 감내해야 할 때가 된 과제에 가깝다. 다만 “왜 두려워하는지 모르겠다”는 고답적 인식보다는 그 법의 부작용을 겸허히 살피고 가능하면 대책까지 강구하는 책임 있는 배려가 아쉽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장기 불황에 민생이 곤궁해진 상황이다. 내년 9월 시행에 앞서 김영란법을 다듬더라도 단순한 ‘고답적 정의’가 아니라, 고단한 현실을 배려하는 ‘유연한 정의’가 되길 바란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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