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양에 사는 유모(21)씨는 지난해 11월 “통장만 빌려주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며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네 후배 이모(17)군 등 3명을 꼬드겼다. 유씨의 말에 혹한 이군 등은 가지고 있던 통장 2개를 개당 4만~8만원에 넘겼다. 현금(체크)카드도 하나씩 더 만들고 입출금 내역을 실시간 알려주는 서비스도 유씨가 알려준 대포폰으로 신청해줬다.
유씨는 이렇게 확보한 통장으로 자신이 인출책으로 있던 보이스피싱 조직을 등쳤다. 개당 60만원을 받고 조직에 팔아 넘긴 뒤 여분으로 만들어둔 현금카드로 피해자들이 입금한 돈을 중간에서 가로챈 것이다. 후배들이 가입해둔 알림서비스는 유씨에게 먹잇감이 그물에 걸렸다는 신호를 주는 유용한 수단이 됐다.
유씨의 범행은 보이스피싱 ‘역사기’ 범죄가 청소년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4개월여 만에 덜미를 잡혔다.
경기 안양만안서는 유씨를 전자금융거래법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유씨에게 통장을 제공한 고교생 3명을 포함, 7명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고 1일 밝혔다. 동종전과 18범으로 별다른 직업이 없던 유씨는 이런 수법으로 범죄 수익금 1,080여만 원을 인출해 유흥 등에 탕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군 등 7명이 건넨 통장 6개는 지난달 7일까지 대출사기, 보이스피싱 등 전화금융범죄에 쓰였다. 확인된 피해자만 김모(27ㆍ여)씨 등 5명으로 피해액은 7,200여만 원에 이른다. 경찰은 유씨의 여죄를 캐는 한편 중국에 근거지를 둔 이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유명식기자 gij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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