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루치 前 특사 전망
1994년 북한과의 핵 협상을 통해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냈던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 특사가 31일 “이란과의 핵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과 새로운 협상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갈루치 전 특사는 이날 북한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 주최로 열린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조찬 간담회에서 “이란 핵 협상이 타결돼 합의안이 마련되면 오바마 행정부는 공화당이 이끄는 의회로부터 이를 방어하는 데 온 신경을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란 핵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과 북한 핵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은 결국 같은 고위 관료들”이라며 “2011년 작고한 워런 크리스토퍼 전 국무장관이 말했듯이 미국의 국가안보 관료들은 한 번에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제네바 협상은 실패작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적극 변호했다. 톰 코튼(공화ㆍ아칸소) 상원의원이 이란 핵 협상이 타결되면 실패한 1994년 ‘제네바 합의’의 재판이 될 것이라고 비판한 데 대해 “제네바 합의는 성공적이었고 분명한 효과가 있었다”고 반박했다.
갈루치 전 특사는 “당시 북한은 제네바 합의를 통해 영변의 5메가와트 흑연감속원자로 가동을 비롯한 모든 핵 프로그램을 동결했고, 신설하려던 영변의 50메가와트 원자로와 태천의 200메가와트 원자로 건설도 중단했다”며 “제네바 합의 없이 북한이 핵개발을 계속했다면 2000년쯤에는 이미 연간 30개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 200㎏의 생산 능력을 갖췄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은 아직도 이 수준의 핵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제네바 합의가 유효하게 지속된 8년간 핵개발을 동결시키는 효과가 분명히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갈루치 전 특사는 또 “1990년대 후반 북한이 파키스탄으로부터 전수받은 비밀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었다”고 소개한 뒤, “북한의 대량파괴무기(WMD) 개발 중단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포괄하는 ‘페리 프로세스’를 통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포함한 핵 문제 전반을 해결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자리에 동석한 조엘 위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연구원은 “빌 클린턴 행정부는 제네바 합의의 틀 내에서 북한의 비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다루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며 “2000년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방문했을 때 제네바 합의를 근거로 정밀 사찰을 요구했고 핵 프로그램의 투명성을 강조하기도 했었다”고 소개했다. 위트 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이런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됐고, 부시 행정부 들어서도 물밑 노력을 기울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밝혔다.
워싱턴=조철환 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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