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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 때보다 돈 더 찍어… 한은 발권력 남용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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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 때보다 돈 더 찍어… 한은 발권력 남용 논란

입력
2015.04.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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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대출금 규모 15조4000억, 20년7개월 만에 최대치 기록

작년 통안채 발행 181조 역대 최대

회사채 시장 정상화, 기술금융을 통한 중소기업 지원, 안심전환대출 출시 등 정부 정책마다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 대출 및 출자에 나서면서 한은 고유권한인 발권력의 남용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경기 회복을 지원하는 것은 중앙은행의 책무라는 긍정론 한편으로, 재정활동 영역에 세금 대신 새로 찍은 돈을 투입하는 편법이라며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환란 때를 능가하는 한은 발권력 동원

31일 공개된 한국은행의 2014년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한은 대출금 잔액은 전년말(9조1,837억원)보다 5조원 가까이 늘어난 14조1,624억원을 기록했다. 외환위기에 따른 부실기업 정리로 대규모 정책금융이 동원됐던 1998년(14조3,035억원) 이래 최대 수준. 별도로 집계되는 한은의 지난해 말 대정부 대출금 잔액 또한 전년보다 1조원 늘어난 4조1,172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보였다.

한은 대출이 크게 늘어난 것은 지난해 3월 금융당국의 회사채시장 정상화 방안에 따라 정책금융공사(현 산업은행)에 3조4,590억원이 대출된 데다가, 7월에는 은행을 통한 중소기업 자금지원 프로그램으로 한은 대출금의 76%를 차지하는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가 3조원(12조원→15조원) 증액됐기 때문. 올해 들어서도 대출금 규모는 1월 14조8,000억원, 2월 15조4,000억원으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2월말 잔액은 외환위기 국면에서의 최고치(1999년 2월 15조884억원)를 뛰어넘는 규모로, 1994년 7월(15조6,300억원) 이후 20년 7개월 만에 최대치다. 최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결정에 따라 이달부터 금융중개지원 대출 한도가 5조원 추가 상향(15조원→20조원)되면서 이같은 급증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한은은 안심전환대출 재원 공급 차원에서 조만간 주택금융공사에 2,000억원을 추가 출자할 예정인데 여기에도 신규 화폐 발행이 필요하다.

“한은 고유업무” vs. “편법 재정”

한은 대출은 화폐가치 변동과 직결되는 발권력이 동원되고, 정책금융 성격이 강해 정부 재정활동과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논란을 일으킨다. 한은은 늘어난 유동성을 조절하기 위해 대출금액에 상응하는 규모의 통화안정채권(통안채)을 발행한다 국가부채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사실상 부채와 다름없는 통안채의 지난해 발행규모(181조5,000억원)는 전년보다 18조원 늘어 역대 최대치다. 다만, 외환위기 시절 연 7% 안팎이던 통안채 금리가 1% 후반대로 떨어졌고, 2000년대 들어 3.68배까지 치솟았던 본원통화량 대비 통안채 발행 비중도 1.55배로 낮아지는 등 리스크는 다소 줄었다.

한은은 발권력을 동원한 대출 확대가 한은 고유임무에 부합한다는 입장이다. 이주열 총재는 30일 “발권력 남용은 피해야 하지만, 성장 모멘텀 확충이나 금융안정 도모 등 중앙은행 임무에 부합하는 자금지원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다른 한은 관계자는 “한은 업무가 모두 발권과 관련된 것인데, 여기에 ‘발권력 동원’이라는 표현을 붙여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도 했다.

지금의 한은 대출금 수준을 ‘발권력 남용’으로 보긴 어렵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통화당국이 양적완화 등 비전통적 방식까지 동원해 경기부양에 힘쓰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며 “발권력 동원의 대표적 부작용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인데 저물가·저금리 상황인 지금은 인플레 걱정을 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도 “경기회복이 절실한 상황에서 통화당국이 이 정도 수준에서 나서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발권력이 재정정책에 편법 동원되고 있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세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정부가 국회 승인 절차까지 밟아야 하는 재정지출 대신 금통위 결정만으로 가능한 발권력을 편의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중립적으로 이뤄지는 통화정책과 달리 특정영역에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중개지원대출 등은 입법부 통제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경수 성균관대 교수는 "정부가 한은 발권력을 동원해 정책금융을 강화할 경우 자칫 시장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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