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개발銀 설립도 물건너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닻을 올리면서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구상이 추진력을 잃고 표류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동북아 지역 개발의 무게 중심이 급격히 중국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3월 독일 드레스덴 방문 연설에서 발표한 동북아개발은행 설립 방안은 정부 내에서조차 “물 건너 갔다”는 비관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동북아 지역 국가와 국제금융기관이 공동 출자해 거대 투자금융기관을 설립하면서 북한 및 인근 지역 인프라 개발에 나서겠다는 것이 당초 정부의 구상. 특히 다자간 국제금융기구를 설립하면 신용을 바탕으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어 실제 자본금보다 훨씬 큰 돈을 동북아 개발에 투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동북아개발은행 설립 계획은 성공적 출범을 앞둔 AIIB에 완전히 묻히는 분위기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AIIB가 동북아 지역의 인프라 건설에 나설 경우 동북아개발은행 건립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한 중앙아시아나 서남아시아 등지 인프라 개발에 더 관심을 쏟고 있다고는 하지만 동북아 역시 그 우산 아래 놓일 수밖에 없다.
AIIB 출범은 올해 한국이 의장국을 맡은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소지가 있다. GTI는 한국 중국 러시아 몽골 4개국(북한은 2009년 탈퇴)이 두만강 인근 지역은 물론 중국 연길에서 북한 청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을 잇는 지역에서 교통 에너지 관광 무역을 발달시키자는 취지로 2005년 설립한 지역협의체. 정부는 오는 11월 총회에서 GTI를 국제기구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신탁기금에 돈을 넣은 국가는 한국이 유일할 정도로 다른 나라들의 관심은 시들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AIIB 출범으로 GTI는 주요 지역 현안에서 밀려나는 모양새다. 정부 관계자는 “러시아는 유가 하락 등으로 제 코가 석자이고, 몽골은 투자할 재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중국이 자국 주도 프로젝트에 더 관심을 두면서 입지가 좁아지게 됐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2013년 10월 밝힌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도 AIIB 출범으로 노선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통신 물류망 등을 통해 아시아와 유럽을 잇겠다는 구상이지만, 육상 및 해양 실크로드를 지향하는 중국의 일대일로와 유사한 측면이 많다. 게다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아직까지 뾰족한 진전이 없는 반면, 일대일로는 이번 AIIB 출범으로 든든한 자금 줄을 얻게 됐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은 “박 대통령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을 밝힌 이후 정부는 뾰족한 후속 대책을 내놓지 않았지만 중국 정부는 시진핑 주석이 실크로드 구상을 밝히자 마자 이를 뒷받침하는 AIIB 카드를 내놨다”며 “대외 경제 전략의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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