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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 칼럼] 개천에서 용 나면 안되는 이유

입력
2015.03.3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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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은 부정할 패자의 공간 아니고

위계주의 표상인 '용'은 지양할 가치

어울려 사는 공생·복지 정치 만들어야

학교 무상급식 중단을 결정한 홍준표 경남 도지사가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광고를 일간지에 내었다. 그는 경남도 신년인사회에서도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정치적 포부를 밝혔다. 그런데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지향하는 정치는 두 가지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지닌다.

첫째, ‘개천’에 대한 절대적 비하이다. ‘개천’은 전적으로 부정해야 하는 삶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빈곤과 황폐 그리고 ‘패자’들의 하찮은 삶의 표상으로 전락된다. 둘째, ‘용’으로 상징화되는 가치의 문제점과 위험성이다. ‘용’이란 다른 생명들과의 ‘공생(共生)’이 아니라, 그들 위에 ‘군림(君臨)’하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승자’의 표상이다. 따라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가 되는 것을 정치적 목표로 삼는 것은, 결국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수 ‘위에’ 군림하는 소수를 양산함으로써 사회적 지위에 따른 ‘인간 위계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천-비하’와 ‘용-지향’적 정치관이 지니고 있는 결정적인 인식론적 오류가 있다. 그것은 ‘개천’이란 사실상 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공간이며 그 다양한 ‘개천’들이 모여서 비로소 ‘사회’라는 ‘바다'를 이루고 있다는, ‘존재의 공생적 유기성’을 보지 못하는 점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세계는 ‘개천’에서 솟아나와 권력과 부를 향유하는 극소수의 ‘용’을 선망하고 양산해 내는 사회가 아니다. 오히려 그 ‘개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개천’ 자체를 살만한 공간으로 만드는 사회이며,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포괄적인 복지제도들과 교육구조들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사회이다. 그래서 ‘개천’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또는 사회경제적 위치에 상관없이 ‘모두’가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삶의 조건들 속에서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개천’에 사는 사람들을 위하여 의식주, 교육, 의료 등 가장 기본적인 삶의 조건들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고 보장하는 것은, 사실상 ‘개천’에서 살아가는 다수의 국민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며 의무이다.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국가란 왜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분명히 기억할 것은, 그러한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보장하는 다층적 복지제도들은 국가가 국민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국민으로서의 ‘권리’라는 점이다.

세계의 영구적 평화를 모색하는 사상으로서 18세기에 등장한 ‘코즈모폴리턴 권리’라는 개념이 이 21세기에 들어서서 세계시민사회를 향한 중요한 구상으로 재등장하고 있다. 이 ‘코즈모폴리턴 권리’가 주어지는 조건은, 민족이나 국적이 아니라 단지 이 ‘지구 위에 거하는 인간’이라는 것뿐임을 칸트는 강조한다. 이러한 ‘코즈모폴리턴 권리’와 같은 거시적 이상이 아니더라도, 단지 이 ‘한국땅 위에 거하는 인간’이라는 조건 하나만으로 ‘개천’ 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 삶에 필요한 생존 조건들을 보장 받는 ‘한국인 권리’를 제도화시키고 지켜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것이 정치의 중대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개천’들을 휘저으며 다양한 종류의 생명들 ‘위에서’ 권력을 휘두르고 군림하는 ‘용’은, 이제 이 21세기에 필요 없다. 아니, 그러한 ‘용’들의 출현과 양산을 막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용’들은 ‘개천’의 삶을 통째로 부정하면서, 한국땅의 모든 이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공생과 복지의 정치’가 아닌 ‘군림과 탐욕의 정치’로 우리사회를 멍들게 하기 때문이다.

강남순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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