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글판에 오른 글씨 10여 점
붓과 컴퓨터 합작한 현대적 서예
한글 아름다움 세계 알리고 싶어
손글씨가 사라져가는 요즘, 글씨를 통해 기쁨과 슬픔을 표현하고 위로를 전하는 이가 있다. 광화문 글판으로 알려진 캘리그라피(멋글씨) 박병철(50) 작가다. 2009년 겨울 광화문 글판부터 지금 걸려있는 글판까지 포함해 광화문에 걸린 그의 작품만 10여편에 달한다. 그의 글씨는 주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은행 본점, 관악구청사, 부산시청 벽면은 물론 막걸리 ‘대박’부터 이마트의‘쌀 초코파이’와 같은 상품부터 최근 방영을 시작한 KBS 반려동물 프로그램 ‘단짝’까지 모두 그의 작품이다.
멋글씨는 손으로 그린 그림문자라는 뜻이지만 컴퓨터 서체와 달리 감성을 담아 표현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그는 30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멋글씨는 붓으로 자유롭고 창의적인 글씨를 쓰고 이를 컴퓨터에 옮겨 작업을 하는 것으로 ‘현대적 서예’”라고 설명했다.
박 작가는 고등학생 때까지 럭비선수였고, 운동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군대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해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게 됐고, 평소 관심이 있던 글과 그림을 해보면 어떨까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중 지인을 통해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다.
“학창시절 운동을 하긴 했지만 디자인 쪽에도 관심이 있어 새로 공부하며 광고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광고 제작을 위해 직접 손으로 쓰고 시안도 그리고 이미지도 오리고 붙이는 등 손재주들이 필요한 상황이었죠. 요즘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가 더 중요한 시대입니다.”
디자이너 일을 하던 중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손편지로 쓰기 시작했다. 글씨를 쓰는 게 그에게 위로가 됐고 손글씨를 통해 누군가에게도 위로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2004년 그는 멋글씨 전업작가로 전향했다.
박 작가가 생각하는 좋은 멋글씨는 뭘까. 그는 “처음에는 남들에게 멋있게 보이기 위해 보여주기 위한 글씨를 썼다. 하지만 감정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서 “멋을 부리기 대신 글의 내용과 뜻을 제대로 전달하는 데 주력하고 사람들이 음미하고 공감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도전은 멋글씨를 통해 한글의 아름다움을 해외에 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한글을 가로 풀어서 쓰는 대신 세로로 풀어서 쓴 ‘복글씨’를 독창적으로 개발했다. 그는 5월 미국 시카고와 미네소타대학에서 한국 총영사관 주최로 열리는 ‘한글파티’에서 강연을 하고 교민과 현지인들에게 사랑, 행복, 대박 등을 세로로 풀어서 쓴 복글씨를 처음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또 글씨쓰기 노하우를 담은 책 ‘마음 담은 글씨’를 출간, 내 멋글씨에 있는 독자들과 소통할 예정이다.
“멋글씨를 배우러 온 분들 중에는 글의 내용과 멋글씨에 공감해 울면서 오는 분도 있습니다. 그럴 땐 저도 위로를 받아요.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희망과 용기를 주는 글씨를 계속 쓰고 싶습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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