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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천고사설] 아시아적 가치와 유학

입력
2015.03.3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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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유학사회의 임금들은 어진 정사, 즉 인정(仁政)을 최고의 가치로 쳤다. 그런데 인정의 첫 머리는 백성들의 밥 문제 해결이었다. 그것도 모두가 균등한 토지를 소유하는 체제 내의 밥 문제 해결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등현(藤縣) 부근에는 춘추(春秋)시대 등국(藤國)이 있었는데, 그 군주는 맹자의 학문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맹자(孟子) ‘등문공(藤文公)’에는 맹자와 등문공의 대화가 다수 실려 있다. 등문공이 맹자에게 정전법(井田法)에 대해 물었다. 맹자는 “무릇 인정은 반드시 토지의 경계(經界)를 정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하는데(夫仁政, 必自經界始), 토지의 경계가 바르지 못하면 정전이 균등하지 못하게 되고, 곡록(穀祿ㆍ관료들의 봉급)이 평등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폭군과 탐관오리들은 토지의 경계를 바로잡는 일을 소홀히 한다”라고 답했다. 어진 정사는 백성들이 고른 토지를 소유하게 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런 토지제도가 정전법인데, 사방 1리의 토지를 우물 정(井)자 형태로 나누면 백 무(畝)씩 아홉 개의 구획이 나온다. 여덟 집에서 백 무씩 차지해서 농사를 짓고 가운데 공전(公田)은 공동으로 경작해서 세금으로 내는 것이 정전법이었다. 맹자뿐만 아니라 고려, 조선의 많은 개혁 정치가들도 이상으로 삼았던 토지제도가 정전제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 대부분의 재화를 소수가 독점하면 체제가 망할 조짐으로 여겼다. 고려도 후기 들어 소수 권세가들이 나라 안의 재화를 독점하고 대다수 농민들의 생활이 도탄에 빠지면서 체제 위기에 내몰렸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직후 정도전과 같은 역성혁명파였던 대사헌 조준(趙浚)이 “무릇 인정은 반드시 토지의 경계를 바로잡는 데서 시작합니다(夫仁政, 必自經界始)(고려사 ‘식화지’)”라는 맹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혁명적 토지개혁을 주문한 것은 이들이 정전제를 새 왕조 개창의 명분으로 삼았음을 말해준다. 조선 개창은 한마디로 고려 왕조가 토지문제를 체제 내에서 해결하지 못한 결과였다.

정조는 재위 7년(1783) 흉년이 들자 3일 동안 감선(減膳)하면서 자신의 정사에 어떤 잘못이 있었기에 가뭄이 들었는지 지적해 달라고 요구하는 구언(求言)을 했다. 이때 정조는 “아!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食爲民天). 나의 한결같은 생각은 다만 백성들의 먹을 것에 있다”라고 말했다.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는 식위민천(食爲民天)이 인정의 기초였다. 여기에 백성들에 대한 자애로운 마음이 덧붙어야 인정의 완성이었다.

정조가 재위 14년(1790) 수원의 사도세자 묘에 가는데 길은 멀고 굴곡이 심해서 군사와 말이 모두 지쳤다. 그러자 경기감사가 조금 더 편한 길을 표시한 지도를 올렸다. 정조는 “저 나루 건너 십 수 리가 푸른 숲인데, 그 가운데 길이라면 혹 남의 집 분묘(墳墓)를 범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물었다. 감사가 “영역(塋域ㆍ무덤)은 아니지만 이른바 청룡(靑龍)입니다”라고 답했다. 무덤을 가로지르지는 않지만 무덤 좌측의 청룡산이란 말이었다. 그러자 정조는 “어찌 가까운 길을 취하기 위해서 길을 만들면서 남의 집 분산(墳山ㆍ묘소를 쓴 산)의 청룡을 침범하겠는가. 속히 다른 데로 바꾸라”고 말했다(홍재전서 ‘일득록’7).

싱가포르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그와 김대중 대통령이 1994년 ‘포린 어페어즈’에서 아시아적 가치를 두고 논쟁을 벌인 일이 떠올랐다. 리 총리가 ‘유교적 메커니즘과 서구식 민주주의, 인권 등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자 김 대통령은 ‘맹자의 주권재민이나 동학의 인내천 사상 등을 근거로 민주주의와 인권은 인류 보편의 것’이라고 반박했다. 리 총리가 1997년에 낸 회고록에서 “나는 항상 마키아벨리가 옳다고 믿어왔다”고 말한 것은 그의 ‘아시아적 가치’가 권위주의 체제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높은 국민소득 달성에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31년간의 철권통치는 차치하고라도 21세기에도 인간존엄성에 대한 모독인 태형이 있는 나라가 싱가포르다. 대한민국이 모범으로 삼아야 할 나라가 아님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공자와 맹자는 물론 정조도 리콴유의 ‘아시아적 가치’는 유학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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