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환자 150여명 입원, 요양사 70여명이 교대 근무
물리치료 보조에 대소변 수발, 노래자랑 열어 교감 쌓기도
"어느 자식이 이렇게 해주겠어…" 노인들엔 정 나누는 의지처
조무사 자격증 따도 혜택 없어, 비정규직 고용 불안도 개선해야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백발의 할머니가 휠체어에 앉아 중얼거리자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요양보호사가 “아이고, 누가 그랬어요?”라며 등을 토닥였다. 할머니가 일어나기 위해 불편한 몸을 뒤틀자 요양보호사는 아기를 달래듯 조심스럽게 옷 매무새를 고쳐줬다.
24일 서울 강남구 세곡동 서울요양원. 지난해 11월 문을 연 이곳은 건강보험공단이 노인장기요양보험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장기요양 급여 비용의 적정성을 검토하기 위해 설립한 요양원이다.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때문에 혼자 살 수 없는 150명의 노인이 생활하고 있다. 요양원에는 1,2,4인실로 구성된 47개의 방이 있고, 4~5개의 방이 하나의 마을을 이룬다. 그렇게 형성된 10개의 마을엔 각각 요양보호사가 배치돼 노인 환자들을 돌본다.
병원 가는 길에 허리를 다쳐 혼자 움직일 수 없게 돼 요양원에 들어온 정필진(89) 할머니는 “(요양보호사들이) 늘 사근사근하게 말하고 친절해서 집에 있는 것처럼 보호받는다”고 말했다. 경증 치매로 사설 요양원에서 3년 정도 지낸 경험이 있는 김춘배(91) 할머니는 “(요양보호사들이) 큰소리 한번 안내고 잘 해준다”며 “요양원 시설도 좋지만 서로 정을 나누며 지내는 게 좋다. 서로 감사하고 사랑하면서 지낸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어느 자식들이 이렇게 우릴 대해 주겠냐”며 손을 내저었다. 할머니들은 누룽지를 간식으로 먹으며 도란도란 누워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요양원 안규원 복지요양팀장은 “가끔 마을 대항 노래자랑을 열기도 한다”며 “방을 마을 단위로 묶자 노인들이 서로 의지하며 돈독한 관계를 맺게 됐다”고 말했다. 경증 질환 할머니들이 지내는 목련마을에는 마사지, 물리치료, 그림 그리기, 책 읽기 등 프로그램이 있어 재미있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이날도 세명의 할머니가 나란히 휠체어에 앉아 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색종이 접기를 하는 할머니, 옆에서 색칠놀이를 하는 할머니, 이를 지켜보다 꾸벅꾸벅 조는 할머니, 그리고 옆에서 이들을 칭찬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요양보호사의 모습은 정이 넘치는 가족 같았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서울요양원에서 지내는 노인들은 물론이고, 요양보호사들의 만족도도 아주 높은 편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는 모두 75명. 이 가운데 주ㆍ야간 근무를 번갈아 하며 입소노인의 신체활동과 목욕, 대소변 수발, 식사 수발과 물리치료 보조, 병실 청소 등을 담당하는 인력은 70명이다. 근무 인원은 배치기준인 입소자 2.5명당 1명보다 10명 더 많지만 일손은 항상 부족한 편이다.

중증 와상 환자를 돌보고 있는 5년 차 요양보호사 구영임(56)씨는 “어머니 아버지 같은 노인들과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어 만족감이 크지만, 노인들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파출부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선입견 때문에 속상한 부분도 많았다”고 말했다. 구씨는 “처음 이 일을 시작 할 때는 노인들의 기저귀를 가는 것도 힘들고, 냄새도 참기 힘들어 3일 간 밥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였지만 가정 일과 비슷해 적성에도 맞고, 몸이 고달픈 대신 심적으로는 스트레스가 없어 좋다”고 말했다.
앞서 경기 의왕시와 안양시의 시립요양원에서 근무했던 구씨는 “이제는 눈빛 하나 손짓 하나만 봐도 노인들의 상태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치매 노인들과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겨서 치매예방 관리가 교육을 받았다”며 “최근엔 간호조무사 자격증 시험도 봤다”고 말했다.
구씨는 시간이 허락한다면 노인심리상담 공부도 해 볼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나 구씨가 이런 자격증을 따더라도 월급이 오른다거나 다른 보상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다른 직업군의 경우 해당 업무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자격증을 따거나 연수를 받을 경우 그만큼 혜택이 뒤따르지만 비정규직 신분으로 고용이 불안한 대부분의 요양보호사들에겐 먼 나라 얘기다.
요양원의 표준모델을 제시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 서울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들의 처우 문제는 시설관리나 치료 못지 않게 입소 노인들에 대한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중요한 항목이다. 요양원 측은 복도 한 켠에 발마사지기와 파라핀 치료기 등을 구비해 요양보호사들이 잠시나마 쉴 수 있도록 배려했다. 불안정한 고용 형태도 바꿔나갈 생각이다. 박해구 서울요양원 원장은 “요양보호사는 봉사정신을 갖춰야 하는 특수 직업인”이라며 “현재 일하고 있는 직원들은 전부 계약직이지만 일정 수준의 평가 후 점차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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