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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와 결별한 스리랑카, 100일 계획은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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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와 결별한 스리랑카, 100일 계획은 성공할까

입력
2015.03.3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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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팍사 정권의 어두운 과거… 내전 승리 후 권한 오히려 강화

올해 1월 조기 대선서 정권 교체… 야권 시리세나 후보 앞세워 승리

도전 과제들 첩첩산중… 의원내각제 도입 등 제도 미완성

경제발전 위한 정책마련 시급, 타밀족·무슬림 권익 신장도 숙제

10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룬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스리랑카 대통령이 1월 9일 대통령 당선 후 수도 콜롬보 선거 사무실에서 야권 지도자들과 회동을 마치고 자리를 떠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0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룬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스리랑카 대통령이 1월 9일 대통령 당선 후 수도 콜롬보 선거 사무실에서 야권 지도자들과 회동을 마치고 자리를 떠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라자팍사의 등장

2005년 11월 19일 인권변호사 출신인 마힌다 라자팍사가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 공화국의 6번째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대선 당시 그의 핵심 공약은 제왕적 대통령 폐해를 막기 위해 대통령중심제를 폐지하겠다는 것이었다. 1994년 찬드리카 반다라나이케 쿠마라퉁가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비슷했다.

하지만 라자팍사는 대통령 당선 후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 대통령중심제를 폐지하기는커녕 대통령의 권한을 더 강화했다. 독립위원회를 설치해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도록 되어 있는 헌법을 무시했다.

라자팍사는 그래도 승승장구했다. 2009년 30년 넘게 지속된 타밀 분리주의 반군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와 정부군과의 내전이 정부군 승리로 끝났다. 라자팍사는 내전 승리에 힘입어 2010년 다시 한 번 대통령에 당선됐다. 특히 내전 승리로 신할리족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스리랑카는 인구 74.88%를 차지하는 신할리족과 15.4%를 이루는 타밀족의 오랜 내전으로 내부 인종 갈등이 심하다.

선거운동 기간 중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마힌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선거운동 기간 중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마힌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라자팍사와 그가 소속된 의석 3분의 2를 차지하는 다수당 스리랑카자유당(SLFP)은 재집권 후 헌법 개정에 나섰다. 이들이 통과시킨 제18차 헌법 개정안은 행정부 권한을 대대적으로 확대하고 3권 분립이라는 정부 구성의 기본 원칙을 무력화했다.

수정된 헌법은 대통령의 임기 제한 조항을 없앴다. 또 독립기구에서 판사를 임명하던 이전과는 달리, 대통령이 직접 판사를 임명하고 판사의 임기도 상대적으로 짧게 만들었다. 이로써 사법부가 대통령을 포함한 행정부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게 됐다.

기소권을 가진 검찰청도 형편이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이 의원들을 불신임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면 입법부가 그저 거수기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후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가해자가 대통령 또는 집권 정당의 핵심 권력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면, 범죄 사실을 밝히고 처벌할 사법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재판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지연되고, 경찰은 증거를 조작하며, 처벌 받지 않다 보니 이런 범죄가 상식이 돼 버리고 마는 것이다.

라자팍사의 10년 임기 동안 법치주의 시스템이 점점 마비되면서 군국주의 족벌주의 정치가 득세했다. 공공장소에서 시위를 하던 평범한 시민이 군인의 총을 맞고 사망하는 사건이 몇 차례 발생했다. 공권력 남용이었지만 언론도 침묵했다. 미디어에 대한 검열이 심해지면서 국영 방송은 권력을 감시하기 보다는 라자팍사를 애국적인 지도자로 홍보하는 선전전에 열을 올렸다. 대통령의 형제들과 친척들은 국방부 재무부 의회대변인 그리고 다양한 국가의 외교관 등 국가의 고위직을 차지했다. 라자팍사 대통령의 형 차말 라자팍사는 국회의장, 동생 고타바야는 국방부 차관, 또 다른 동생 바실은 경제부 장관을 맡았다.

2015년 대통령 선거

라자팍사는 올해 1월8일 조기 대선을 실시해 세 번째 집권해 도전했다. 그의 대통령 임기가 2년 남은 상태였다. 그가 조기 대선을 실시하기로 결정한 데는 대통령 지지율이 최근 몇 년간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2년 후 선거에선 질 것이 뻔하다는 전략적 판단이 컸다. 라자팍사는 소속 정당인 SLFP와 다른 소규모 정당들과 연합한 통일인민자유연합(UPFA)을 앞세워 대선에 출마했다.

제1야당인 통일국민당(UNP)이 이끄는 반(反)정부 연합 세력과 시민사회단체는 라자팍사에 대항할 공동 후보를 몇 달 전부터 찾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라자팍사의 소속 정당인 SLFP의 사무총장이자 보건부 장관이던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사무총장이 강력한 후보로 등장했다. 시리세나의 주요 선거 공약은 대통령중심제 폐지와 선거제도 개혁, 훌륭한 통치였다.

시리세나가 공동 후보로 선출되기 전에도 시민단체와 종교단체 지도자들, 그리고 야권은 제왕적 대통령중심제를 폐지하고 스리랑카에 민주주의를 재확립할 수 있는 ‘100일 계획’을 실천할 후보를 추대하기로 동의한 상태였다.

수세에 몰린 라자팍사는 각종 선거법 위반은 물론, 국가 미디어와 국가 자원을 총동원해 선거운동에 나섰지만 결국 시리세나에게 패배했다.

시리세나의 당선은 시리세나와 야권에게만 위대한 승리가 아니었다. 민주주의와 인권, 훌륭한 통치를 염원한 스리랑카 국민 모두의 승리였다. 라자팍사는 내전을 종식시키는 공을 세웠지만, 갈등 이후의 국가를 경영하는 방법은 몰랐기 때문에 선거에서 패배했다.

특히 선거 결과는 스리랑카 북쪽과 동쪽 지역에 주로 거주하는 무슬림과 타밀족 등 소수자들이 라자팍사의 군국주의와 중앙집권, 그리고 일부 부유층이 과실을 독점하는 사회기반시설 개발 프로젝트에 반대하고 있었음을 보여줬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타밀족의 투표율이 유독 높게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 후 라자팍사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쿠테타를 시도했다는 루머가 있었지만, 아직 법정에서 밝혀지지는 않았다. 시리세나 대통령 측은 새 정부 출범 후 라자팍사 전 대통령이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대선 개표를 중단시키려고 했다가 군과 경찰, 검찰 총수로부터 거절당했다며 쿠데타 혐의로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대선 며칠 후, 시리세나 신임 대통령은 전 야권 연합 지도자이자 UNP 당수인 라닐 위크라마싱하를 총리로 임명했다.

라자팍사 이후의 도전과제들

선거는 끝났지만 스리랑카 시민들의 민주화 과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진짜 중요한 공약들은 아직 이행되지 않았다. 그 공약들을 지키기 위해 정부가 직면한 몇 가지 도전과제들이 있다. 핵심은 100일 계획이 다 이행될 때까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정당들을 하나의 연합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100일 계획 과제들 중 일부는 이미 몇 가지 법안을 통과시키며 달성했지만 대통령중심제를 폐지하고 의원내각제를 도입하며, 선거제도를 개편하기로 한 공약은 아직 이행되지 못했다.

선거제도 개편 역시 지난 20년간 반복되어 온 대선 공약 중 하나다. 현재의 선거제도는 선거법 위반과 부패가 심각하다. 후보자들은 선호투표제 때문에 막대한 양의 돈을 사용한다. 새롭게 제안된 선거제도는 최다득표자당선제도와 패배후보자에 대한 비례대표제의 혼합이다. 또 유권자가 후보자 1명에게 투표하게 함으로써 선거운동으로 인한 낭비와 마찰을 최소화될 수 있다.

100일 계획의 또 다른 핵심 과제는 많은 인권운동가와 언론인, 그리고 시민단체가 염원하는 정보권리법안(RTI) 제정이다. 그 동안 스리랑카 많은 정치인들이 의회가 해당 법안을 통과하도록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현재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AARC) 중 아프가니스탄과 스리랑카 단 두 국가만이 시민이 정부에게 정보 공개를 요청할 권리가 없다.

100일 계획과는 별개로 두 번째 도전과제는 선거공약에도 있는 경제적 발전을 실현하는 것이다. 대선에서 승리한 야권 연합은 경제정책에서 서로 다른 모순적인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다. 시리세나 대통령은 SLFP와 함께 중도 좌파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반면, 현 총리와 다른 내각 장관들은 우파인 UNP의 대리자들이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의 경제정책은 지금껏 자유개방경제에서 정부계획경제를 무원칙적으로 왔다갔다했다. 이런 일관성 없는 경제정책은 스리랑카 경제발전 실패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보인다.

또 다른 어려운 과제는 소수자 권익이 신장될 수 있는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타밀족과 무슬림 소수자들은 전국적으로 조건 없이 민주주의의 회복을 도왔고 두 집단 모두 훌륭한 통치라는 기치 아래 그들에 대한 해결책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집권연합 내 정당들 사이에서 타밀족과 무슬림 소수자 관련 정책에 대해 의견 차가 크기 때문에, 이 부분이 야권 연합의 응집력을 검증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해결이 쉽지 않은 도전과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이번 정권 교체는 스리랑카 민주주의에 큰 전환점이다. “희망은 온통 어두운 속에 한줄기 빛을 볼 수 있는 것이다”라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남아공 데스몬드 투투 신부의 말이 떠오른다. 이번 정권 교체는 만연한 불법과 부패 그리고 편협함과 친족 등용이 사회의 핵심 가치를 천천히 조직적으로 좀먹고 있던 과거의 스리랑카와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또 이 변화는 스리랑카에 민주주의와 훌륭한 통치를 뿌리내리기 위해 공헌하려는 국민들에게 기회의 창이 될 것이다.

수렌 D. 페레라 스리랑카 캔디 인권사무소 인권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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