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불평등이 모든 문제의 원인
기성세대는 해결 의지 없어
평등화 세대가 세상을 바꿔라"
"불평등 피해자 3포,잉여세대가
함께 분노하고 저항해야"
“평등을 요구하십시오. 부르짖으세요. 여러분 탓이 아니라, 세상의 탓입니다.”
장하성(62) 고려대 경영대 교수가 청년들의 마음을 울렸다. 26일 서울 중구 스페이스노아 강연장에서 한국일보 주최로 열린 제55회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 북콘서트에서다. 저술ㆍ학술부문 수상작인 ‘한국 자본주의’(헤이북스)는 그의 첫 단독저서이자 4년 여간 공들인 노작이다. 이 책은 집요한 논증으로 임금ㆍ고용ㆍ분배 없는 3무(無) 성장이 일그러뜨린 한국 자본주의의 맨 얼굴을 드러내며 ‘분배논쟁’ 역류를 일으켰다.
장 교수는 이날 ‘3무시대의 3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는 희망이 있는가’라는 화두로 청중 앞에 섰다. 청년을 대상으로 입을 열기는 처음이라는 그의 작심발언은 한 편의 다급한 격문에 가까웠다. 그는 “한국 자본주의는 국가경제는 꾸준한 성장을 하고도 일자리도 소득도 늘지 않은 상태”라며 “모든 문제는 임금의 불평등으로부터 온다”고 입을 뗐다.
장 교수는 “이미 개인의 노력으로 뚫어낼 수 없는 불평등 구조가 형성됐는데도 보수는 아예 분배를 외면하며, 진보는 절대다수 국민이 불평등한 임금으로 먹고 사는데도 이 문제는 외면한 채 복지다 뭐다 재분배만 이야기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세상을 바꿀 의지도 동기도 없는 기성세대를 대신해 20~30대 3포세대와 잉여세대가 ‘성장이 대체 뭘 위한 것인지’ 말해야 한다”며 “아무도 대신 바꿔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각 세대의 시대정신을 산업화(70~60대), 산업화와 민주화의 가교(50대), 민주화(40대)로 정의하며 3포세대와 잉여세대로 지칭되는 30대와 20대에게 “평등화 세대”의 정체성을 주문했다. 장 교수는 “50대가 산업화, 40대가 민주화를 자신의 시대를 변화시키는 가치로 삼았다면 바로 평등화가 희망을 갖지도 꾸지도 않는 지금 청년세대의 시대정신이 돼야 한다”며 “나비의 고귀한 날갯짓이 파동을 만들고 폭풍을 일으키듯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이용해 여러분의 어젠다를 만들고 계층투표를 하는 등 나비혁명을 일으키라”고 호소했다.
장하성 교수는 청년들의 현실직시를 위해 한국 경제가 보유한 암담한 기록들을 꺼내 들었다. 그가 대학과 시장에서 수십 년간 목도한 현실이자 책을 통해 제시한 데이터, 근거, 수치들이다. 무엇보다 총근로소득에서 근로소득 상위 1%, 5%, 10%가 각각 차지하는 몫이 점차 늘었다. 그는 “고도성장을 하던 1960~80년대에는 오히려 불평등지수가 그렇게 크지 않았는데 90년대 중반부터 어떤 지표를 보더라도 불평등이 급격히 빠른 속도로 심화한다”고 말했다.
이어 “흔히 미국을 중산층의 나라, 살기 좋은 나라로 착각하지만 미국은 가장 불평등이 심각한 1%를 위한 사회”라며 “지금 우리는 대공황 당시보다도 더 불평등하다는 현 미국이 약 30년에 걸쳐 이룬 불평등의 수준을 한국이 15년 만에 따라잡았다”고 지적했다. 2012년 상용근로자 총임금을 기준으로 한 OECD 회원 33개국 소득불평등 순위는 미국이 1위로 이스라엘(2위), 터키(3위) 한국(4위)이 뒤를 이었다.
노동현실도 참담하다.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25.2%로 OECD 2위,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 45.4%, 임시노동자 비율 22.4%로 OECD 4위, 자영업자 비율 28.2%로 OECD 4위, 청년세대 첫 일자리 35.9%가 비정규직이다. 장 교수는 “모든 게 최악의 상황”이라며 “국민의 30%가 자영업자고 그 나머지의 절반이 다시 비정규직”이라고 분석했다.
기업 간 격차도 심화했다. 전체 노동자의 80%가 피고용자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데도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평균 임금비율은 1980년대 91~97%에서 2013년 53~62%로 거의 반토막 났다. 그는 “현대차를 놓고 봤을 때 현대차 직원은 연봉 9,400만원, 1~3차 부품업체 직원은 각각 5,700만원, 3,400만원, 2,300만원을 받는 구조”라며 “같은 일을 하면서도 누구는 월급을 4분의 1만 받는 것은 한 나라에 사는 국민이라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연간 노동시간은 한국이 2012년 기준 OECD 2위였다. 그 사이 기업부채(제조업)는 1980년 488%에서 2013년 93%로 줄고, 가계부채는 같은 기간 23%에서 152%로 폭증했다.
장 교수는 이를 방관해온 정치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보수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반노동에 매몰됐고, 진보는 반자본으로 이념지키기를 한다. 한쪽에서는 좌빨이다 종북이다 몰고가고, 한쪽에서는 걸핏하면 미국과 유럽의 이론을 가져와 억지로 끼워 맞춘다. 임금 불평등이라는 본질적 문제는 그대로 두고 그걸 교정하는 문제에만 집중한다. 임금 불평등 문제는 차치하고 소득 불평등을 말한 피케티 열풍도 3개월 만에 끝나지 않았나.”
그는 이 같은 상황을 정치권이나 기성세대가 스스로 바꿀 가능성에 강한 회의를 드러냈다. “한국사회를 빈곤에서 탈출시킨 산업화세대든, 민주화의 주역이자 소리 내어 울지 못한 가교세대든, 민주화의 훈장을 달고 풍요를 누린 민주화세대든 모두 20~30대를 위해 세상을 바꾸지는 않는다. 아무런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불평등 한국’을 타개할 동기를 가진 유일한 집단이 20~30대라는 것이다. 그가 청년들을 향해 ‘한국 자본주의’를 말하기 시작한 이유가 여기 있다. “자기개발, 힐링, 행복학에 매달린 삼포ㆍ잉여세대가 더 이상 문제를 ‘내 탓’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불평등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세대다. 함께 분노하고 저항해야 한다. 청년들이 계층투표를 하고 인접세대를 설득하면 세상은 바뀐다. 찍을 정당이 없어도 상관없다. 누구에게든 매우 구체적으로 임금평등을, 고용평등을 요구하라. 그것이 여러분이 인생을 미래를 대한민국을 바꾸는 길이다.”
한국일보가 주최하는 제55회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 릴레이 북콘서트는 다음달 9일까지 매주 목요일 열린다. 다음 순서는 어린이ㆍ청소년책 부문 수상작 ‘진짜 코 파는 이야기’(책읽는곰)의 작가 이갑규씨가 들려주는 그림과 그림책 이야기다. 다음달 2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 홈페이지 검색창에 ‘한국출판문화상’을 입력하면 참가신청 페이지로 연결된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박준호 인턴기자 (동국대 불교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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