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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실종된 삼권분립

입력
2015.03.2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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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국회의원의 겸직 금지 조항을 담고 있는 게 국회법 제29조다. 그런데 제1항부터가 참 뜨악하다. ‘의원은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직 이외의 다른 직을 겸할 수 없다’니. 이어지는 ‘다만’으로 시작하는 예외조항에 포함시킨 것도 아니고,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장관)은 아주 대놓고 겸직을 허용한다. 헌법의 삼권분립 정신을 개별법이 정면으로 뒤엎고 있는 격이다.

문제의 소지가 많다는 건 법을 만드는 그들 스스로도 모르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국회의원 겸직 금지 대상에 총리와 국무위원을 포함하는 법 개정 논의도 수 차례 있었을 테다. 하지만 지금까지 4차례나 발의됐던 개정안은 그때마다 번번이 폐기됐다. 지난해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도 국무위원 겸직 금지를 한참 논의하더니 막판에는 결국 제외시켰다. 문제는 있지만 기득권은 내려놓고 싶지 않다는 ‘의원님’들의 강력한 저항 때문이었다.

덕분에 유일호ㆍ유기준 새누리당 의원은 국토교통부와 해양수산부에 ‘10개월 시한부 장관’으로 입성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현직 장관이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려면 총선일 90일 전에 물러나야 한다. 내년 20대 총선 일정(4월 13일)을 감안하면 장관직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10개월이라는 얘기다. “나는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당당한 선언은 기대하기 어렵다. ‘의원님’들에게 대한민국 장관 자리가 탐나고 매력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언제 잘릴지 모를 장관 자리를 위해 다음 정권까지 이어질 4년 임기의 국회의원 자리를 포기할 리는 만무하다. 현 정부에서 20대 총선이 갖는 중요성을 감안하면 대표적인 친박 의원인 두 장관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 또한 아닐 테다.

“대한민국 장관들의 평균 재임 기간이 1년 남짓인데 10개월이 뭐 그리 짧은 시간이냐”고 따져 묻는 이들은, 열심히 살다가 어느 날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남은 생애를 살아가는 것의 차이를 모르는 이들이다. 앞으로 10개월은 어찌 흘러갈지 대충 예상이 된다. “해양수산 업무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업무가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더라”는 유기준 장관의 말마따나 부처 업무를 익히는데 적어도 한두 달은 지나갈 것이고, 큰 현안 태풍이 몰아치면 이것저것 돌아볼 겨를 없이 쏜살같이 시간이 흘러갈 것이다. 여름이 시작되면서부터는 가을 국정감사에 매진해야 하고, 그 뒤에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두어 달. 장담컨대, 아마 이 때쯤 되면 머릿속은 장관직 수행보다 공천을 받고 지역구민을 챙기는 일로 훨씬 더 많이 채워져 있을 것이다.

물론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정치인이니, 게다가 이 정권에서 힘깨나 쓸 수 있는 친박 의원이니 짧은 임기에도 뭔가 도드라진 외형적 성과를 내려고 의욕을 불태울 수는 있다. 그렇지만 뚝딱 이뤄낸 보여주기 식 성과는 직원들에게, 다음 장관에게, 그리고 국민들에게 무거운 짐과 후유증만 떠넘길 뿐이다. 지금 내각엔 총리를 포함한 18명의 국무위원 중 두 사람을 포함해 ‘의원님’들이 무려 6명에 달한다. 모두 다음 총선 잠재 출마자들이다.

이제 막 여론의 눈치를 보며 어정쩡하게 시작된 주호영ㆍ윤상현ㆍ김재원 의원 등 친박 실세 ‘3인방’의 대통령 정무특보단의 활동은 아예 법까지 허물고 있다. 청와대 특보는 국회법이 대놓고 겸직을 허용하는 국무위원도 아니고, ‘다만’으로 시작되는 예외조항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청와대 특보가 예외조항 첫 번째인 ‘공익 목적의 명예직’ 아니냐는 청와대의 설명은 수긍하기 어렵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청와대에서 정책 입안에 참여하는, 현 정부와 운명을 같이 하는 활동을 ‘공익 목적’이라거나 ‘명예직’이라고 보기 어렵다.

지금 정국을 강타하고 있는 고강도 사정 수사가 준(俊)사법기관이랄 수 있는 검찰의 독자적인 작품이라고 보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검찰은 사법부가 아니라 행정부”라고 강변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렇다고 정권의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려도 괜찮은 조직일 순 없다. 지금 서로를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삼권(三權)은 온데간데 없고 어딜 둘러봐도 대통령을 위시한 행정부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면 너무 비약일까.

이영태 경제부장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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