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자 텟짱의 14년 담은 사진집… 도쿄북페어 '꼭 읽어야 할 책' 선정
중국 자본에 잠식당하는 제주… 위기의 해녀 문화 통해 고발 계획도
“권 작가. 당신이 참 좋은 일을 하는 건 알겠는데 그런다고 해서 당신한테 박수칠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까 돈 되는 사진 찍어요.”
지난 21일까지 전남 국립소록도병원에서 개원 100년 만에 처음으로 ‘한센병 회복자’사진전을 연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권철(48)씨는 한 한센병 회복자로부터 이 같은 얘기를 듣고 눈물을 훔쳤다.
사진전의 주인공은 일본 구사쓰(草津)의 한센인 요양소 ‘낙천원’에 살았던 시인이자 한센병 회복자인 텟짱(가명 사쿠라이 데쓰오)이다. 권씨는 1997년부터 텟짱이 사망한 2011년까지 14년간 그의 삶을 사진에 담았다.
“텟짱은 17세에 한센병에 걸린 후 평생 박해 받다가 50대에 시인이 됐습니다. 텟짱은 시를 통해 또 자신을 찍은 사진을 통해 한센병은 전염병이나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완치됐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주고 싶어했습니다.”
2013년 텟짱을 찍어온 사진들로 만들어 발행한 사진집 텟짱! 한센병에 감사한 시인은 지난해 도쿄북페어에서 ‘지금 꼭 읽어야 할 책 30권’에 포함됐다. 이 책에는 2002년부터 권씨가 촬영한 20여장 정도의 소록도 사진도 담겨 있다. 권씨는 “한센병은 완치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한센인이 아니라 한센병회복자라는 단어를 쓰는 게 맞다”며 “텟짱의 삶과 회복자들의 울분이 담긴 전시를 통해 국내에서도 한센병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이 깨지길 바란다”고 했다.
권씨는 대학에선 토목공학을 전공했다. 사진은 동아리에서 취미로 하던 수준이었는데 한 지인이 탄광촌 노동자들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을 보고 사진을 통해 생각하는 것을 표현해보자 결심하게 됐다. 일본으로 건너가 사진 공부를 시작했고 원전 피폭 노동자를 다루는 탐사보도 사진작가 히구치 겐지를 만나 지금까지도 끈끈한 사제지간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에선 사진전문 주간지인 ‘프라이데이’등에 기고도 하고 다큐멘터리 사진을 작업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를 보도 사진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바꾼 계기는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이었다. 무너진 건물에 몸이 끼어 탈출하지 못한 당시 12세 여자 아이 루쇄는 두 다리를 절단해야만 살아날 수 있었다. 그 사진을 찍으며 그는 “내가 왜 취재를 하는가 등에 대한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됐다”며 “사진을 통해 사실을 기록하는 보도 사진에서 사실을 넘어 진실을 찍는 다큐멘터리 사진에 주력하는 전환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권씨는 대중적인 작가는 아니지만 이미 일본에서는 사진작가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도쿄 최대 환락가 신주쿠(新宿)구 가부키쵸(歌舞伎町)의 18년을 밤낮으로 기록한 사진집 가부키초는 2013년 일본 최고의 권위 있는 출판상으로 꼽히는 고단샤의 ‘고단샤 출판문화상 사진상’을 수상했다. 텟짱과 가부키쵸, 또 그의 자서전을 포함해 일본에서 9권, 한국에서는 5권의 책을 냈다.
“가부키초, 텟짱 모두 원해서 했다기 보다 근처에 살면서, 또 우연히 텟짱을 만나면서 기록 다큐멘터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제 사진의 테마는 인연이지요. 하지만 조직에도 속하지 않은 한 사진작가로서의 힘은 너무 미약했습니다. 제 자신이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도 있지만 묵묵하게 부딪힌 결과물들입니다.”
일본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는데 지난해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는 뭘까. 그는 “2011년 후쿠시마(福島) 원전이 터졌을 때 아이가 100일이었다. 아이를 한국으로 보내놓고 기러기아빠로 생활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며 “일보다 가족이 먼저였기 때문에 한국행을 결심했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제주도를 찾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그는 카메라를 놓을 수 없었다. 휴식을 위해 찾았던 제주도에서는 중국 자본에 의해 잠식당하는 우리 땅, 해녀들의 문화를 찍었다. “중국이 이호테우 해변을 사고 카지노를 들여오고 있습니다. 카지노가 들어서면 해녀가 물질을 못하게 되고 우리 해녀 문화가 중국 자본에 의해 사라지게 됩니다.”3개월간 작업한 이호테우 해변과 해녀를 담은 사진은 5월에 사진집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7월에는 10여년간 작업해 온 야스쿠니(靖國) 신사 문제를 다룬 사진집도 나온다. 그는 “일본 우경화를 비판하자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그들이 왜 야스쿠니에 참배를 하는지 꼬집을 것이다”고 했다. 과거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현재와 미래도 바로 설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권씨가 현재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는 ‘원전’이다. 2011년 일본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와 후쿠시마 원전을 취재한 그는 국내 노후 원전 수명 연장을 둘러싼 논란에 귀 기울이며 국내 원전 관련 사진도 찍고 있다.
권씨는 또 사람들과 함께 사진집을 만들어가는 ‘권철의 독대(獨對)와 연대(連帶)’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가부키초 사진집에 실지 않았던 2,000점의 가부키초 사진을 바탕으로 그간의 경험과 사진작가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점들을 다루는 책을 회원들과 공동작업을 통해 발간할 예정입니다. 또 프로든 아마추어든 관계없이 회원들과 함께 일본 속 한국 또 한국에 남긴 일본의 유무형 흔적들을 쫓아 촬영한 사진집을 내고 싶습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