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총리가 일본군 위안부를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의 희생자”라고 표현했다. 내달 말 미국을 방문, 일본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상ㆍ하원에서 합동연설을 하게 된 것을 계기로 미국 일간신문 워싱턴포스트와 가진 인터뷰(27일자 보도ㆍ현지시간)에서다. 아베 총리는 그러면서“측량할 수 없는 고통과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을 겪은 이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아프다”라고 덧붙였다.
국제사회에서‘인신매매’란 여성이나 아동 등 약자를 상대로 ‘본인의 의사에 반해’강제적으로 이뤄지는 인권유린적 착취행위를 통칭한다. 그간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태도를 보여왔던 아베 총리가 이런 뜻의 인신매매라는 용어를 처음 쓴 것 자체는 언뜻 진일보라는 평가도 나올 법하다. 그러나 언급 배경과 의도를 조금만 들여다 보면 국제사회가 ‘성노예 사건’으로 규정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흐리려는 계산된 말장난임이 금방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아베 총리는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인신매매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다분히 일제와 일본군에 의해 조직적으로 저질러진 인권유린 사건임을 부정하고 호도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일본측은 그 동안 일본군 위안소는 민간업자들이 운영했으며 당시 일본정부나 군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비춰 아베 총리는 인신매매가 민간업자들이나 그들이 부렸던 하수인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강변하며 책임을 비껴가기 위해 “인신매매 희생자”라는 자락을 깔았을 개연성이 높다.
만일 진짜 의도가 그렇다면 역겹기 짝이 없는 행태다. 일부 연구자들은 조선인 군위안부 징모가 업자의 취업사기로 이뤄진 형태가 압도적이었다고 주장한다. 또 그 과정에 동족인 조선인들이 적극 개입했다는 연구도 있다. 그러나 이조차 일제가 강제방식을 피하려는 눈 가리기 식 술수였음은 숱한 연구가 입증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인신매매 논리가 종당에는 위안부 책임이 조선인들에 있었다는 황당한 주장으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어떤 궤변을 늘어놓는다 해도 일제가 군대 위안부를 침략전쟁의 도구로 적극 활용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20세기 최악의 성노예 사건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다. 이 명백한 사실 앞에 일본군과 정부가 위안부 강제 모집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개입했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다. 아베 총리는 내달 29일 갖는 미 상ㆍ하원 합동연설에서 이런 본질을 덮고 교묘한 말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비껴가려고 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서 진정한 화해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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