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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천안함 5년, 서해에 평화는 오고 있는가

입력
2015.03.2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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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이 서해의 군사정세 획기적으로 바꿔놓아

물류 허브로 도약하려면 서해 연안도시 개발 최우선

평화구상ㆍ평화정착의 의지와 능력 지금 바로 발휘해야

국가를 인간의 몸이라고 한다면 서해는 어느 날 전혀 생각지 못했던 곳이 곪아터진 환부라고 할 수 있다. 이 상처는 지금도 계속 악화하며 치료에 엄청난 비용을 필요로 한다.

백령도에서 연평도에 이르는 서북 해역은 한국전쟁 당시에도 총 한 방 쏘지 않은 전쟁의 무풍지대였다. 이 섬 주민 중 전쟁을 체험한 것은 육지에서 온 피난민이 전부였다. 서해 어장에서는 남북이 공동조업을 했고 비교적 자유로운 통항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서해에서 총성이 들리리라고 짐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에는 바다 위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북방한계선(NLL)이라는 경계선이 있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1999년 제1연평해전을 필두로 하여 2002년 제2연평해전, 2009년 대청해전을 경과하더니 2010년 3월 26일에 천안함 피격사건과 그 해 11월 연평도 포격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천안함 사건이 과연 “북한 소행이냐”에 대해 아직 상당한 의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 소행이 아니다”라는 확실한 반증이 없으므로 일단 정부의 조사 결과를 존중하자. 다섯 번의 교전을 통해 남북한은 도합 200명 넘는 군인이 숨졌고 그보다 더 많은 숫자의 정신적·신체적 상해를 입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여기에다 상당한 군사 장비와 민간의 재산 피해까지 고려하면 서해는 평화와 번영의 공간이 아니라 파괴와 증오의 공간으로 변했다. 서북 해역은 남북한 국가의지가 충돌하는 열점(熱點)으로 자리를 잡았다.

천안함 사건은 서해의 군사정세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적어도 중강도 수준의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공격형 군사무기가 서북 해역에 집중되었다. 남한은 서북도서방어사령부를 창설하고 백령도와 연평도에 해병대원 1,200명을 추가했으며 다연장포 구룡과 K-9 자주포, 이스라엘제 스파이크 미사일, 대포병 레이더를 육상에 배치했다. 또한 공군은 만일의 교전사태에 공대지 미사일을 장착한 전투기를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체제로 전환하였고 해군 2함대사령부는 대잠수함 작전 수행이 가능한 해상공격헬기를 함상에 배치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더욱 빠르고 공격적인 지휘통제체제와 지·해·공의 합동화력으로 유사시 북한을 초기에 제압할 수 있는 결전태세가 이루어졌다.

북한은 해주에 본부를 둔 4군단사령부가 연평도와 백령도 인근 해안에 76, 130미리 해안포, 240미리 방사포, 샘릿, 실크웜 지대함 미사일을 증강하였다. 또한 남포 서해사령부 예하에 공기부양정 기지를 건설하고 잠수함을 증강하여 유사시 합동작전으로 남한을 압박할 수 있는 체제가 더욱 강화되었다.

이런 유형의 무기로 상대방에 대한 물리적 타격을 도모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수시로 전자파 공격을 감행하여 상대방의 시스템을 마비ㆍ혼란시키는 무형의 전쟁도 진행되고 있다. 신속하며 압도적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새로운 전쟁 양상이 서해에서 나타남에 따라 남북한 정치권력은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정치적 위신을 세우는 정치·군사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부터 서해안시대를 표방하고 영종도 신공항 건설, 송도 신도시 건설, 평택항 개발 등을 진행해 왔다. 장차 번영하는 중국의 도시와 경쟁하면서 동북아시아의 물류 허브로 도약하려면 국가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서해 연안도시의 개발이 최우선 과제였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해의 안정이 절실하다. 북한도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아가려면 평양으로 가는 전략적 관문인 해주와 남포가 외국 자본으로 재개발되어야 한다. 백령도에서 평양까지가 직선거리로 불과 70㎞밖에 안 된다. 이렇게 국가의 심장에 가까운 해안에 남한의 공격무기가 일제히 집결하고 NLL로 항구가 봉쇄되어 있다는 건 북한으로서도 견디기 어려운 현실이다.

결국 서해의 군사적 결전태세는 남북한에게 가장 중요한 국가의 발전 전략 하나를 송두리째 뽑아가는 치명성을 내포하고 있다. 남북한이 서해에서 협력하지 않는다면 남북 공히 상당한 수준의 경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 하나를 날려버리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남북한 정부에 심각한 스트레스를 강요한다. 이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2010년 11월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를 준비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가장 우려한 것은 서해에서 남북한 간 국지적 충돌 가능성이었다. 3월의 천안함 사건 이후 이어진 대북 5·24조치로 당시 서해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군사적 긴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회의를 무사히 치르려면 무엇보다 북한의 협조가 절실했다. 그래서 6월 이후 이명박 정부는 서해에서 군사훈련을 일절 중지시켰다. 미국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가 8월과 9월에 서해에 진입하겠다고 했을 때 이를 차단하고 11월 말로 시기를 미룬 당사자는 이명박 정부였다.

이후 G20 서울회의가 무사히 끝나자마자 국방부는 미뤘던 서해 훈련을 일제히 재개했다. 연평도의 해병대가 5개월 간 묵혀둔 해상사격훈련을 이 때 한꺼번에 실시한 것이다. 북한은 예전에 비해 많은 양의 해상사격훈련을 자신들에 대한 군사적 공격 신호로 간주하고 도를 넘어선 반격을 실시했다. 이것이 바로 연평도 포격 사건이다. 서해에서 군사적 안정을 도모하여 국가의 이익을 도모해야 할 때 우리 정부는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이런 상황은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 개최 전후에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아시안게임 막바지인 10월 4일 북한의 황병서 총정치국장 등 최고위층이 인천을 방문하면서 국가적 행사에 북한과의 대화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3일 뒤 연평도 인근에서 남북한 함정 간에 교전이 벌어질 위기가 조성되었으나, 우리 함포에서 불발탄이 발생하는 바람에 교전 없는 해프닝으로 끝난 적이 있다. 대화와 적대행위가 교차하는 결정적 순간을 다행인지 불행인지 딱히 단정할 수 없는 우리 군의 불량포탄으로 가까스로 넘기는 이상한 결말이었다. 여기에 화라도 났는지 한 달여 후에 박근혜 대통령은 “방산비리는 이적행위”라며 우리 군의 불량포탄을 색출하는 대규모 수사에 착수했다. 지리적으로 민감하고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관리해야만 하는 서해의 지정학이 다시 드러난 것이다.

지난 5년 간 서해에서 경제적 번영과 안보 논리는 분리되어 서로를 잠식해 왔다. 이러한 분리와 충돌은 21세기에 성장과 발전을 도모해야 할 국가의 발목을 잡는 무시할 수 없는 불안이다. 서해는 낮은 분쟁으로 시작해 이제는 언제든 상대방을 때릴 수 있는 급소가 되었다. 나아가 남북한 정치권력의 운명까지 좌우할 수 있다. 지금 서해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남과 북의 정치권력이 통제할 수 없는 신속한 결전이 수행될 것이고, 이는 더 큰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

관리가 불가능한 영역에서 고강도 분쟁이 일어나면 국가는 치명적인 피해를 본다. 이런 위험한 바다 인근에 내로라하는 규모의 발전하는 도시가 있다는 것은 전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역설이다. 이처럼 불안한 바다에서 언젠가 닥칠 파국을 예방하는 평화구상과 평화정착의 의지와 능력을 지금 바로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5년 전 서해를 피로 물들인 천안함의 교훈이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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