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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치앙마이의 특별한 공간 반롬사이

입력
2015.03.29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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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에 머문 지도 어느새 두 달이 되어간다. 지난 주말에 ‘아주 특별한 숙소’라고 자랑하고픈 호시하나 빌리지에 다녀왔다. 숙박업소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많다. 우선 이곳은 일본 영화 ‘수영장’의 배경이 된 곳이다. ‘수영장’은 영화 ‘안경’과 ‘카모메 식당’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고바야시 사토미와 모타이 마사코가 출연한 ‘슬로우 무비’다. 치앙마이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는 엄마 교코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딸 사요의 이야기가 수영장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바로 어딘가로 떠나버리는’ 엄마 때문에 상처 입은 딸과 “어디에서든지 누구와 있든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면 된다”고 믿는 엄마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마음을 흔드는 영화다. 두 번째는 이 게스트하우스가 전부 개인의 기부로 지어졌다는 점이다. ‘클레이 하우스’는 한 남자가 1 년간 머물며 혼자 힘으로 지어 올린 흙집이고, ‘이치가와 코티지’는 이치가와 씨의 기부로 세워졌다. 이런 식으로 다섯 채의 독립 건물이 몇 년에 걸쳐 하나씩 들어섰다. 호시하나 빌리지를 특별하게 만드는 세 번째 특징은 이곳이 비영리기구(NPO) 반롬사이를 운영하기 위해 지어졌다는 점이다. 영화 ‘수영장’의 배경이 된 수영장도 반롬사이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 후 수영장을 활용하기 위해 게스트하우스를 짓게 되었다니 재미있는 발상이다.

‘반얀 나무 아래의 집’이라는 뜻의 반롬사이는 에이즈로 부모를 잃고, 모자감염으로 HIV 보균자가 된 아이들의 공동체다. 2살부터 17살까지 서른 명의 아이들이 7명의 태국 선생님, 5명의 일본인 자원봉사자와 함께 생활하며 자립을 준비하는 공간이다. 내가 찾아간 날은 마침 마을 아이들과 운동회를 하는 날이었다. 커다란 반얀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는 정원에서 아이들이 어울려 달리고, 뛰고 있었다. 이웃의 선입견을 지우기 위해 반롬사이는 마을 아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도서관을 짓고, 정기적인 어울림을 가져왔다. 덕분에 이 마을에서만큼은 차별적인 시선이 사라졌다.

특이하게도 이곳을 설립한 이는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다. 태국의 HIV 보균자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었던 그가 일본인 디자이너 나토리 미와 씨를 만나 의기투합했다. 생글생글 웃는 인상이 정겨운 나토리 미와 씨는 16년 째 이곳의 대표를 맡아왔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일본 법인은 지금까지도 반롬사이를 지원한다. 하지만 반롬사이는 외부의 후원은 언제든지 끊어질 수 있기에 단체의 자립을 지향해왔다. 호시하나 빌리지를 만들고, 바느질 작업장에서 옷과 생활용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이유도 재정적 자립을 위해서다.

호시하나 빌리지는 “이런 좋은 의도로 설립된 곳이니 불편한 점은 그냥 참아주세요” 같은 요청을 하지 않는다. 영화에서처럼 수영장을 청소하는 카세 료는 없지만, 이곳은 내가 머물러본 최고의 게스트하우스였다. 손님이 필요로 할 만한 모든 것이 세심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완벽한 기능성을 지닌 하나하나의 독립공간이 자연의 일부로 조화롭게 어울렸다. 방에서도, 화장실에서도 꽃과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세상과 격리된 듯 고요했다. 가만히 정원을 거닐면 마음이 절로 평화로워졌다. 부겐빌레아가 색색으로 피어나고, 프란지파니가 진한 향내를 날리며 떨어져 내렸다. 그곳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좋았다. 저물 무렵 텅 빈 수영장에서 노을을 보며 수영을 하거나, 인간친화적인 고양이 타라짱, 탄탄과 어울려 낮잠자기. POOL호라 이름 붙은 차를 타고 나가 장을 보거나 무료로 빌려주는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돌기. 그마저 귀찮다면 정원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 무엇을 해도 좋았다. 호시하나 빌리지는 설립 이념부터 건축 방식, 운영의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마음을 끌었다. 기업과 단체, 개인의 마음이 맞물려 16년 째 아이들에게 든든한 삶터가 되어주고, 나 같은 이에게는 휴식 그 자체인 공간을 제공해주다니. 이곳을 꾸려가는 이들의 정성과 끈기가 고맙고도 부러웠다.

혹시 그곳에 가게 된다면 손뜨개 열쇠고리 하나는 꼭 사주시길. 치앙마이는 바다가 멀다. 바다를 보고 싶은 아이들이 제 힘으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열쇠고리를 만들어 판다. 여간해서는 팔리지 않아 지금 이 속도라면 140년이 걸려야 돈이 모인다나.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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