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위안부 등 전향적 양보" 요청
한일관계 등 새로운 전기 촉각
미국 의회가 아베 신조(安倍晋三·사진) 일본 총리의 상ㆍ하원 합동연설(현지시간ㆍ4월29일 오전 11시)을 허용하기로 하면서 한국과 마찰을 빚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전향적 양보를 연설에 담아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일본 정부도 일단 “기대해도 좋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져, 일본 총리로는 사상 최초로 미 의회 합동연설에 나서는 아베 총리의 과거사 발언 수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 의회 동향에 정통한 워싱턴 소식통은 26일 “의회는 물론이고 미국의 영향력 있는 거물급 일본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아베 총리가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의견을 일본 측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2015년)의 의미를 미국에 맞추지 말고,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당한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의 기대치에 맞춰달라는 주문이 여러 경로를 통해 아베 총리 측에 전달됐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도 “한일 역사문제에 대해 미국 조야에는 ‘일본이 먼저 풀어야 한다’는 강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며 “아베 총리 연설에 과거사와 관련해 의미 있는 내용이 담기도록 미국이 보이지 않는 노력과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총리로서 사상 첫 합동연설 기회를 얻어내는데 필사적이었던 아베 총리측도 ‘미국 측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입장을 밝힌 한 관계자는 “연설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한 일본 정부 관계자가 ‘과거사 문제와 관련, 기대해도 좋다’는 입장을 미국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이와 관련, 아베 총리의 지난해 7월 호주 의회 연설을 준거로 제시했다. 당시 아베 총리는 역대 일본 총리로는 최초로 2차 대전 중 호주군 포로에 대한 잔학 행위를 사과했다. 주변국에 대한 사과가 빠졌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호주에서는 솔직한 연설이었다는 호평이 나왔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선물(합동연설)을 주면서도 일본을 압박(과거사 해결)하는 미국의 양면작전을 ‘한ㆍ미ㆍ일 3각 동맹’재구축에 대한 강력한 의지 표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아베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가 맞물린 4월 이후 6월말 기간이 한일 양국 모두 대미 외교력이 시험대에 오르는 중요한 기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정엽 아산정책연구원 워싱턴 사무소장은 “미국 기대와 달리, 아베 총리의 합동연설이 역사 퇴행적인 인식을 버리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면 오히려 일본의 대미 외교에 심각한 역풍이 불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이 위안부 문제 대한 미국과 한국의 미묘한 인식 차이를 파고 드는 데 성공한다면 한국 입지가 크게 축소될 위험성이 높다. 한국은 위안부 문제를 일본의 식민지배와 관련된 역사인식 문제의 한 갈래로 여기지만, 미국은 전쟁범죄 내지는 여성인권 문제로 접근하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일본이 이 틈을 비집고 들어 미국은 만족시키지만, 한국 국민 정서에는 부족한 수준의 입장을 표명한다면 아베 총리에 이어 미국을 찾는 박 대통령은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다.
워싱턴 소식통은 “아베 총리의 전향적인 양보에 박 대통령이 유화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한일관계를 경색시키고 한미일 3각 동맹을 저해한다는 비난은 한국으로 쏠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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