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상ㆍ하원 합동회의 연설 공식 발표에 한국 정부는 담담한 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예상됐던 일정이며 외국 정상의 미 의회 연설 자체도 특별한 일은 아니라는 평가절하 반응도 있었다. 다만 연설에서 일본의 과거사 인식이 어떻게 표출될지에 대해선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이다.
외교부 관계자들은 아베 총리의 다음달 29일 미 의회 연설 일정 발표가 놀랄만한 뉴스는 아니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일본 총리의 미 의회 연설 성사가 한일 외교전 패배로 해석될까 민감해 하는 분위기도 엿보였다. 외교부 관계자는 27일 “최근 아베 총리의 방미 얘기가 나오면서 의회 연설 일정도 함께 추진됐기 때문에 새로운 소식은 아니다”라며 “한국 정부가 아베 총리의 의회 연설을 막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전혀 사실과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경우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2011년과 2013년 방미 때 연달아 미 의회 연설을 한 적이 있다. 이승만(1954년) 노태우(1989년) 김영삼(1995년) 김대중(1998년) 전 대통령도 미 의회 연설에 초청된 전례가 있어 아베 총리 연설에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라는 설명도 있었다. 안호영 주미 한국대사도 26일 간담회에서 “미국 조야, 즉 행정부와 의회 학계 언론계에서 한일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대단히 견고한 공감대, 분명한 인식이 있다”며 “우리가 이 문제(워싱턴의 한국 피로감)에 너무 관심을 갖다가 노심초사가 지나쳐 기우가 되면, 오히려 워싱턴에는 없는 피로감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정부 내에선 2차 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일본 총리의 미 의회 연설이 이뤄진 데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의 미 의회 연설은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과거사 인식에 대한 미국 내 반발 여론 때문에 무산됐던 전례가 있다”면서 “고이즈미보다 더 극우화하고 있는 아베 총리의 의회 연설 성사가 미국 내 한일 과거사 인식에 대한 변화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외교부는 아베 총리가 연설 때 미일관계뿐 아니라 한일 과거사와 관련된 분명한 메시지도 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식민지배, 침략 문제에 대한 어정쩡한 입장 표명이 아닌 과거 무라야마 고노담화를 계승하는 역사인식 입장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외교부는 24일 대변인 브리핑에서도 “(아베 총리 방미시)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성찰을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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