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지식의 풍경
배우성 지음
돌베개 발행ㆍ440쪽ㆍ2만원
18세기 정조 시대를 조선의 황금기라고 일컫는다. 문예부흥, 북학파, 실학 등으로 기억되는 이 시기는 TV 드라마와 영화, 소설의 단골 소재다. 정조는 현명하고 멋진 군주로, 북학파 등 실학은 성리학을 극복하는 자주적이고 개혁적인 학문으로, 이 시대의 활력과 변화의 움직임은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진진한 배경으로 여겨져 왔다. 역사학계는 거기서 자생적 근대의 맹아를 보기도 한다.
역사학자인 배우성 서울대 교수는 조선 후기 지성사를 다룬 신간 ‘독서와 지식의 풍경’에서 널리 퍼진 이 인식에 이의를 제기한다. 정조는 과연 개혁 군주인가. 박지원 등 실학자들은 정말 근대 지향적이었는가. 이런 해석은 우리에게도 유럽과 같은 근대적 자각이 있었다고 강조하려는 태도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현재의 로망을 과거에 투영한, 일그러진 거울은 아닐까.
저자는 그 시대의 특별한 활력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그 시대의 고유한 맥락과 조건 속에서 조선 후기 지성사를 파악함으로써 로망이 아닌 실제에 접근하려고 시도했다. 조선 지식인들에게 책을 읽고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으며 그들이 추구한 지식은 어떤 것인지, 지식의 유통과 공유 양상은 어떠했는지 치밀하게 파고들었다.
정조만 해도 널리 알려진 면모와 사뭇 다르다. 그는 주자성리학을 철저히 신봉했고, 박지원 등의 개성적 글쓰기를 규제한 문체반정 군주다. 사상 통제를 위해 서적 수입 금지령을 내린 첫 번째 조선 왕이기도 하다. 엄청난 독서광인 정조가 규장각에 모은 수많은 책은 열람을 엄격히 통제해 규장각 각신들조차 마음대로 볼 수 없었다. 지식인들은 계속 책을 읽고 썼지만, 개인 수양용이지 대중에게 보급하는 데는 뜻이 없었다. 출판은 국가사업으로 이뤄졌고 유통은 극히 제한됐으며, 지방에는 거의 전달되지 않았다. 지식의 생산과 유통, 공유를 국가가 철저히 통제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문예부흥과는 거리가 멀다.
실학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세학으로 외연을 넓혔을 뿐 주자성리학을 벗어나지 않았다. 정조가 싫어했던 패관소품식 개성적 글쓰기로 알려진 이덕무도 패관소품의 장점을 취하려 했을 뿐 패관소품을 ‘이단’이라고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안정복이 역사책 ‘동사강목’을 쓴 목적은 조선사를 이상적이고 보편적인 중화문화에 연결시키는 것이었고책을 읽고 쓰는 것은 그런 한에서 의미가 있었다. 개인의 발견과 해방, 근대를 개화시킨 독서와 글쓰기, 지식 유통과 공유는 유럽의 경험이지 조선 후기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시민계급이 성장해 봉건질서를 무너뜨리고 근대로 넘어간 유럽과 달리 한국사는 그런 경험이 없다.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전통은 갑자기 단절됐고 근대는 ‘이식’됐기 때문이다. 정조 시대를 황금기로 보는 시각에는 민족적 열패감의 그늘이 없지 않다. 한국사의 고유한 지점, 그 맥락과 조건 위에서 조선 후기 지성사를 온전하게 읽어내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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