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군사분쟁에 초국적 유엔 개입
자유주의국가 뭉쳐 중국에 대항 등
"서방주도 자유주의 평화 기획 실패"
기존 연구 한국전쟁 책임론에 골몰
전쟁 성경 냉정하게 성찰하는 대신
한쪽의 정치적 입장만 강화
한국전쟁은 내전인가 국제전인가.
이 논쟁이 오랫동안 격렬했던 것은 전쟁의 기원에 따라 참담했던 전쟁의 책임 여부가 갈리기 때문이다. 옛 소련의 책임을 묻는 전통주의, 미국 책임을 강조하는 비판적 수정주의, 이들을 반박하는 탈수정주의가 차례로 힘을 받아왔지만 이를 관통하는 물음은 ‘그래서 누가 단죄의 대상이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치열한 “비난게임”이 간과한 질문이 있다. 전쟁이 왜 시작됐건, 남북은 왜 이토록 어설픈 평화체제를 유지하고 있는가. 왜 불안한 정전체제 하에 60년여간 “냉전의 박물관”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는가.
‘판문점 체제의 기원’은 전쟁 책임만 따져 묻던 타성을 깨뜨린다. 나약한 평화를 야기한 원죄 세력을 집요하게 추궁함으로써 냉전사에 매몰된 우리를 흔들어 깨운다. 학계가 이 책을 패러다임의 전환, 대사건, 지적 경이로 평하는 이유다.
독일 베를린자유대 동아시아대학원 박사 후 전임연구원인 저자는 현 판문점 체제를 “자유주의의 보편적 원칙들을 군사력으로 강제로 관철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코 안정적인 영구 평화를 창출하지 못한 실패 사례”로 규정했다. 합의수준이 낮은 군사정전 체제일뿐만 아니라 지난 60여년 간 주변 강대국에 의존해 겨우 유지된 불안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는 전쟁 책임론에 천착해온 기존 연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다수 한국전쟁 연구는 처벌과 단죄라는 형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문제는 이 정서가 전쟁 성격을 냉정하게 성찰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기보다 늘 어느 쪽 정치적 입장을 강화하는 정치투쟁에 의해 압도된다는 것이다.”
그가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며 던지는 질문들은 사뭇 아찔하다. “만일 한국전쟁 자체가 처음부터 특정한 형태의 전쟁임과 동시에 특정한 평화 기획들과 맞물려 그 자장 속에서 전개되고 종식됐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전쟁은 왜 정전협정으로 종식되고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았는가.” 판문점 체제가 서방 주도의 ‘자유주의 평화 기획’의 실패한 결과물이라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그는 자유주의 평화 기획을 칸트적 보편 기획, 홉스적 차별 기획로 나눈다. 칸트적 보편 기획은 “유엔 등을 통한 초국적 법치 기획”으로 인권 등의 원칙 위에서 개별국의 주권보다 초국적 권위를 중시한다. 지역의 군사 분쟁에 유엔이 개입하는 일도 정당해진다. 반면 홉스적 차별 기획은 “자유세계만을 위한 평화?안보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자유주의 국가끼리는 동맹확대를 추구하나 공산세계는 배제하고 군비 경쟁에 매진하는 방식이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전쟁 과정에서 이 두 기획은 번갈아 도입됐다. 한국전쟁 발발 초기(1950년 6~10월)에는 미국 주도하에 유엔이 직접 군사 개입을 실시했다(칸트적). 하지만 중국의 개입 이후(50년 10월~51년 9월) 유엔은 초국적 권위를 상실했고 미국과 유엔은 중국에 대항해 차별적 질서 구축을 시도했다(홉스적). 정전 협상이 시작된 이후 1년 반동안(51년 7월~53년 1월)은 한국전쟁 포로들에게 본국 송환 의사를 묻는 자원송환원칙을 천명(칸트적)했지만 협상 타결 이후 동남아로 냉전이 확대되는 2년간(53년 7월~55년 4월)은 다시 아시아 전역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적 군사동맹 시스템이 구축됐다(홉스적).
칸트적 기획이 일관되지 못한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미국과 유엔이 두 원칙을 번갈아 관철시키는 과정이 강제적이었다는 것이다. 무리한 관철의 사례가 포로수용소 폭력사태다. 당초 한국전쟁 포로의 정체성을 두고 미국은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는 주체”를, 공산진영은 “민족으로서 주체”를 강조했다.
하지만 포로송환 협상은 2년에 걸쳐 교착됐고 거제도 포로수용소 등에서 극심한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한정된 유엔군 경비 인력이 17만명 규모의 포로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포로집단 대표격인 ‘포로경찰’이 등장, 공산주의 전범 혐의자 색출과 고문을 일삼았다. 이에 대항한 공산분파 포로들은 자유주의 교육과 송환심사를 거부했고, 유혈진압이 거듭됐다. 친공포로(송환희망)와 반공포로(송환거부)를 분리하다 사망자가 속출했고 52년 5월 7일 수용소장 돗드 준장이 포로들에게 납치돼 가혹행위 재발 방지 각서에 서명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유엔과 미국 관할 하에서 그 자유의지가 정면 배반된 것이다.
이어진 정전 협상 과정에서 칸트적 보편 기획은 퇴조를 거듭하고 결국 미국의 힘에 의한 홉스적 차별 기획이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만들었다. 한국전쟁 당시 표출된 여러 갈등은 협상으로 해결되지 못했고, 대신 미국의 군사력이 빚어낸 방위협상에 의해 판문점 체제가 구축된 것이 오늘날 야기된 어설픈 평화의 기원이라는 분석이다. 저자는 또 판문점 체제가 동아시아에 공동 안보기구 하나 없이 군비경쟁을 지속하는 만성적 전쟁상태 즉 ‘아시아 패러독스’를 야기했다고 봤다.
그는 사회 분업에 대한 에밀 뒤르켐의 통찰을 빌려 판문점 체제의 한계를 이렇게 지적한다. “폭력에 의해 강요된 휴전은 잠정적일 수밖에 없으며 사람들의 정신을 평온하게 만들지 못한다. 인간의 열정은 그들이 존중하는 도덕적 힘 앞에서만 멈춘다. 만약 이런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국 현실은 가장 힘센 세력이 지배하게 된다. 전쟁상태는 필연적으로 만성적인 것이 된다.”
결국 새로 모색돼야 할 평화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북한의 붕괴나 흡수를 기대하는 보수적 자유주의 평화론은 실패한 판문점 체제를 반복하겠다는 발상”이라고 단언했다. 인도적 지원 등 보편가치에 기반한 협력을 늘리는 가운데 남과 북이 새 통합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아시아 패러독스 극복을 위해 주변국과 공통규범, 교류, 매개 조직을 마련해 아시아연대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남북한과 일본, 중국 모두 출구 없는 외교적 경쟁을 하고 있다. 국가 간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는데도 무기력하다. 판문점 체제는 이런 상황에 취약하다. 이제 자유주의나 홉스의 폐쇄회로에서 벗어날 때다. 한반도 평화의 출발점과 궁극적 지향은 동아시아 지역기구나 민족 통일, 안정된 국가가 아니라 연대가 흘러 넘치는 사회여야 한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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