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 대지진으로 아들 잃은 의사
아내 남겨두고 우주비행사로 떠나
감시사회 미국·증강현실 모순 목격
첨단사회에서 인간은 부분적 존재
히라노 게이치로(41)는 지성의 힘으로 소설을 쓰는 작가다. 현대인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일관되게 탐구해온 그는 ‘지금, 여기’의 모순과 병폐를 인간의 정체성 문제와 긴밀하게 엮어내는 솜씨가 빼어나다. 당대 사회의 핵심 주제를 발 빠르게 문학적으로 이슈화하는 근면함과 장대한 스케일이 방증하는 성실함 또한 한국 문단이 시샘해야 할 탁월한 재능이다. 서너 페이지를 훌쩍 넘는 장광설 앞에 ‘매혹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그에게는 아깝지 않다.
2009년 발표된 SF 작품 ‘던’은 전작 ‘결괴’와 대칭관계에 있는 소설이다. ‘결괴’가 현대인들의 행복 강박주의가 만인의 착취를 위한 경쟁사회의 조작 이데올로기였음을 스릴러의 형식으로 폭로한 작품이었다면, 후속작 ‘던’은 ‘결괴’의 절망을 딛고 희망을 향해 전진하려는 상처 받은 인간들의 고군분투를 그린다. 인류 최초로 NASA의 화성 유인탐사가 성공한 2033년. 세계는 6인의 용맹한 우주비행사들을 영웅으로 호명하며 환호하지만, 우주라는 거대한 렌즈를 통해 바라본 인간의 내면에는 선과 악, 사랑과 배신, 호의와 술수, 신뢰와 음모가 횡행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도쿄 대지진으로 어린 아들을 잃은 일본인 외과의사 사노 아스토. 어떻게 해도 떨쳐지지 않는 상처로 피폐해진 그는 돌연 화성 탐사에 우주인으로 참여하겠다며 아내 교코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다. 상처 위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 아내의 눈에 아스토가 회복한 생의 활기는 유독성의 색채를 띠지만, 혹독한 선발과정을 거쳐 우주비행사가 된 아스토는 결국 2년 반 동안 지구를 떠난다. 고통을 함께하지 못하는 고독의 형벌까지 받으며 둘 사이는 가망 없이 서먹해진다.
소설은 아스토 부부의 갈등을 원의 중심에 둔 채 감시사회의 병리, 미국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흑막, 우주탐사와 군수산업의 결탁, 복잡한 이해관계로 뒤얽힌 국제정치 등으로 서사의 파문을 넓혀간다. 보수정당의 연이은 집권으로 낙태가 위헌이 되고, 동성결혼이 금지된 미국은 방범카메라의 전국적 네트워크를 통해 전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영상으로 검색해볼 수 있는 감시사회이자, 이 감시망을 벗어나기 위해 표정에 따라 얼굴 속 보형물의 위치가 달라지며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는 가소성형이 일반화한 사회다. 증강현실은 죽은 아들의 유전자 정보로 실제와 똑같은 아들을 영상의 형태로 집안에 거주시키고, 인간처럼 행동하고 사고하는 홀로그램이 등장해 도처에 존재할 수 있는 편재성을 인간에게 부여한다.
재집권이 유력한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 딸인 미모의 우주비행사 릴리언 레인이 고립된 우주선 던(Dawn) 안에서 아스토와 한 차례 성관계를 맺고, 이로 인해 아스토가 자신의 아이를 직접 낙태시키게 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서사의 동심원은 크게 출렁인다. NASA의 이 특급비밀이 유출되면서 대선 판도는 순식간에 역전되고, 비인도적 동아프리카 전쟁과 우주광물 획득에 열을 올렸던 군수업체는 몰락한다. 아스토 부부의 결혼도 마침내 파탄지경에 이른다.
작가는 이 복잡하고 광대한 첨단사회에서 인간은 더 이상 온전하게 하나의 존재로 종합되어 있을 수 없다고 진단한다. 세계가 인간을 ‘분인주의’의 사상으로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개인을 뜻하는 영어 단어 ‘individual’은 ‘나누다’라는 뜻의 ‘divide’에 부정접두사 ‘in’을 붙여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존재’로 인간을 규정한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의 인간은 분인(分人) , 즉 디비주얼(dividual)이다. 개인인 ‘individual’은 대인관계나 상황에 따라 훨씬 잘게 나눌 수 있으며, 이 분인의 집합이 바로 개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타자의 분인만 알 수 있을 뿐 개인은 영원토록 알 수가 없다. 아스토 부부의 역경은 여기서 비롯된다.
소설은 사랑과 고통의 공유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란 서로에게 분인일 뿐임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도약으로 끝맺음 한다. 다양한 분인의 구현이 불가능한, 미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광막한 우주에서의 고립은 아마도 희망의 중력을 회복하기 위한 추진체였을 것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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