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광화문 광장보다 신사동 가로수길을 걷고 싶어할까. 우선 ‘이벤트’가 많기 때문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뿐이다. 가로수길에는 카페, 음식점, 상점 등 다양한 건물들이 늘어서 할 수 있는 게 많다. 또 하나의 이유는 ‘공간의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광화문 광장은 차량 통행이 많아 속도가 빠른 공간이다. 가로수길은 차도가 좁은데다 카페에서 밖으로 확장된 테라스형 공간이 많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속도감이 낮고 마음이 편해진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덕수궁 돌담길은 거대한 궁궐 벽과 대사관 건물에 둘러싸여 ‘이벤트’가 적은데 왜 걷고 싶은 거리가 됐을까. 우선 차도가 좁기에 공간의 속도가 느린 것만은 분명하다. 게다가 차량이 인도로 넘어올 수 없도록 가로수와 볼라드(말뚝)를 설치했다. 지나는 사람이 많지 않아 한적하지만 주변 대사관의 철통 같은 보안이 안정감을 준다.
홍익대 건축과 교수이자 건축사무소 소장인 유현준의 눈에 이유 없는 건축은 없다. 건축물은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의 마음과 조응하는 유기체다. 그의 책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도로와 광장, 공공 건축물, 종교 건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축을 만든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소개한다.
유현준의 시선은 일상의 주거공간에도 미친다. 폐쇄적 구조로 된 아파트는 도시 생활을 삭막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집의 내부 구조도 마찬가지다. 현대 주택 구조는 각자의 방에 틀어박히면 소통할 수 없는 구조다. 유현준은 전통 한옥에서 대안을 찾는다. 거실이 과거 마당처럼 개방 공간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방에서 거실 쪽으로 창문을 내면 소통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낸다.
반면 사무실은 프라이버시가 좀 더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일을 지나치게 방해하기에 오히려 제대로 일할 수가 없다. 책상에 책을 잔뜩 쌓아놓거나 개인 컴퓨터의 모니터를 이용해서 다른 이의 시선을 가로막으려 애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현준은 사무에는 협업도 중요하기에 전체적인 공간은 열려있어야 하지만, 개인이 쓸 수 있는 공간이 기본적으로 좀 더 넓어진다면 생각의 크기도 커진다고 말한다. 실로 건축은 삶을 만드는 틀이다.
한국의 건축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 유현준은 재건축에 회의적이다. 그는 “서울의 건축이 기억에 남지 않는 것은 오래된 건물이 없기 때문”이라며 무조건 부수고 새로 지으려는 재건축 유행에 우려를 표한다. 그는 오래된 도시 건축에 설령 문제가 있어도 그 속에서 건축 디자이너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발견한다. 더 중요한 것은 건축가와 건축주,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의 소통을 통해 건축이 재테크의 수단이 아니라 생활의 터전, 사고의 틀이 됨을 알리는 것이다. 건축가 유현준이 책을 쓰는 이유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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