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美와 우호관계 강화 내용
일본 총리가 미국 의회에서 연설을 한 경우는 단 세 차례뿐이다. 미 의회 연설은 외국정상에 대한 최고 예우로 통하기 때문에 전범국가 총리가 그 자리에 서는 것이 그만큼 쉽지 않다. 일본 내 반발을 뚫고 미일안보조약을 성사시킨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가 1954년 상원에서 간단한 인사말을 한데 이어,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1957년,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총리가 1961년 각각 하원에서 연설대에 섰다. 그러나 상·하원 합동연설을 한 일본 총리는 아직 없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인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일본 총리가 상·하원 합동연설을 추진했으나, 당시 헨리 하이드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이 데니스 헤스터트 하원 의장에게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기 전에는 의회 연설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전달해 무산됐다.
결국 가장 최근에 행한 일 총리의 미의회 연설은 1961년 6월 이케다 총리가 한 것으로 미국의 원조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미국중심 자유진영에서 더욱 긴밀한 우호관계를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이케다 총리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유와 인권존중이란 민주주의 원칙은 일본국민의 마음에 굳게 심어져 있다”며 “근면한 일본국민은 전후 파괴와 빈곤에서 미국의 원조로 활력이 넘치는 경제를 재건했다”고 말했다. 또 “세계평화와 안정을 위해 저개발 국가의 경제건설을 돕기 위한 공동사업에 더 많이 공헌할 것”이라며 “케네디 대통령 등 미국 지도자들과의 회담으로 상호이해와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위대한 미국 국민”이란 언급이 빠지지 않았다.
기시 노부스케 총리는 1957년 하원 연설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반공대열에 일본이 굳건히 서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일본은 자유 정의 평등을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진영에 속한 나라임을 분명히 밝힌다”며 “이 가치를 지키지 않고는 그 어떤 평화도 안보도 진보도 없다”고 말했다. 또 “아시아에서 공산주의가 민족주의 형태로 교묘하게 왜곡해 경제적 빈곤에 허덕이는 가난한 나라들을 유혹한다”며 “아시아에서 가장 번영되고 산업화한 일본이야말로 공산주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위협을 막아내는데 건설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총리도 과거 침략에 대한 반성은 연설에 담지 않았다. 아베 총리의 상·하원 합동연설이 주목되는 이유다.
도쿄=박석원기자 spark@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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