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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만들 때 분노·두려움은 넣고 수치심·혐오는 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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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만들 때 분노·두려움은 넣고 수치심·혐오는 빼라

입력
2015.03.2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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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수치심 마사 너스바움 지음 | 조계원 옮김 민음사 발행 | 728쪽 | 3만3,000원
혐오와 수치심 마사 너스바움 지음 | 조계원 옮김 민음사 발행 | 728쪽 | 3만3,000원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철저히 이성에 근거한 법이 좋을까, 아니면 그 반대가 더 나을까. 대부분은 전자에 손을 들지 않을까 싶다. 흔히 감정에 치우치면 오류를 범하기 쉽다고 볼 테니까. 하지만 미국 법철학자 마사 너스바움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2004년 저작 ‘혐오와 수치심’에서 법률 규칙을 구축할 때 감정을 고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법률의 상당 부분이 물리적인 위해와 손상은 물론 감정적인 부분에 대해 주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가 간다. 범죄자의 감정적 상태를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치밀하게 계획해 냉정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것과 분노나 두려움에 휩싸여 우발적으로 살인하는 것에 대한 처벌 수위가 다르다는 사실이 간단한 방증이다.

이처럼 우리의 법률 체계는 분노와 두려움을 고려하는 것을 타당하게 여기지만 수치심과 혐오는 다르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규범적으로 이 두 감정은 왜곡되기 쉬우며 신뢰할 만한 공적 지침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단 혐오와 수치심을 정신분석학적으로 파헤쳐 보자. 한센병 환자에 대한 왜곡된 감정에서 알 수 있듯 혐오는 우리 몸이 지닌 동물성과 유한성을 거부하려는 열망의 반영이다. 때문에 비합리적이다. 수치심은 타자를 불완전하고 나약하고 열등한 존재로 만들어 자신을 완벽하고 강하며 우월한 존재로 만들려 하는 감정이다. 수치심은 타자를 완전히 통제하려는 원초적 욕구에서 기원하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혐오를 기준으로 삼아 어떤 행위가 범법이냐 아니냐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가해진 위해는 혐오스러운 감정과는 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죄를 무겁게 판단하거나 경감시키는 역할을 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범죄자에게 수치심을 주는 처벌도 그의 기본적 권리와 인간 존엄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그는 반대한다.

혐오와 수치심은 때로 인간에게 바람직한 역할을 하지만 인간이 동물적이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배제하려 들기에 위험한 감정이다. 저자는 부당함에 반대하는 분노는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지만 차이를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혐오는 사회를 후퇴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외부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이 사회를 지킬 순 있어도 타인에게 수치심을 주려는 행동이 사회를 보호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책은 결국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으로 귀결된다. 법이 존재해야 하는 것은 인간이 타인에 의해 언제든지 손상을 입을 수 있는 취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존엄성, 자기 발전, 개인 행위의 자유에 초점을 맞춘 자유주의 사회라면 혐오와 수치심으로 타인을 지배해선 안 된다. 그보다는 상호 의존하는 관계를 즐길 줄 알아야 하며, 자신과 타인의 불완전성과 동물성, 유한성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웅변한다. 깊이 생각해볼 주제를 담은 흥미진진한 책. 다만 딱딱하고 관념적인 학문적 문체 때문에 쉬이 읽히지는 않는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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